신미나 시인 / 복숭아가 있는 정물
그대라는 자연 앞에서 내 사랑은 단순해요
금강에서 비원까지 차례로 수국이 켜지던 날도
홍수를 타고 불이 떠내려가는 여름 신 없는 신앙을 모시듯이
내 사랑에는 파국이 없으니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과육을 파먹다 그 안에서 죽은 애벌레처럼 순진한 포만으로
돌이킬 수 없으니 계속 사랑일 수밖에요
죽어가며 슬은 알 끝으로부터 시작으로 들어갑니다
신미나 시인 / 개화기開化期
옛날 옷을 입고 옛날 사람처럼 성에 갔지요
귀문을 지키는 돌은 사람의 얼굴을 닮은 돌 귀도 없고 코도 없이 문드러진 돌
어쩐지 오늘 같은 과거의 어느 날에 한번은 이곳에 온 것만 같아서
붉게 붉게 달려가다 일제히 핏기 가신 꽃 무서워, 무서워 몸이 떨려오는데
앞서가는 사람은 위만 보고 걷습니다 물집 터진 뒤꿈치에 피가 밴 줄도 모르고
사쿠라가 유라유라 사쿠라가 치라치라 화첩 속에서 검은 이를 드러내며 사람이 웃습니다
사쿠라가 유라유라 사쿠라가 치라치라 제 머리로 종을 치며 까마귀가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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