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선 시인 / 모자
1 나무들이 모자를 벗는다. 바람 한 점에도 흐느끼는 나뭇잎들, 나는 이제야 나무를 읽는다. 제 살점 도려내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민머리로 되돌아가는 나무, 나는 배경보다 풍경이 되기 위해 얼마나 허둥댔던가. 술렁이는 바람에 수십 번을 앓았다.
2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나 토성동 항암사로 간다. 다음에 만나면 스님이라고 불러." 자궁암 말기의 내 친구, 낙엽은 계절이 쓰는 유서가 아니라 별에 닿기 위한 유일한 통로라며 활짝 웃는다.
오명선 시인 / 花無十日紅
하늘 아래 몸뚱이를 열어 본 죄 함부로 체취를 흘려 유혹한 죄 하여, 지지 않는 꽃은 없다
오명선 시집 『오후를 견디는 법』, <한국문연> 2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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