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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오명선 시인 / 모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28.

오명선 시인 / 모자

 

 

1

나무들이 모자를 벗는다. 바람 한 점에도 흐느끼는 나뭇잎들, 나는 이제야 나무를 읽는다. 제 살점 도려내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민머리로 되돌아가는 나무, 나는 배경보다 풍경이 되기 위해 얼마나 허둥댔던가. 술렁이는 바람에 수십 번을 앓았다.

 

2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나 토성동 항암사로 간다. 다음에 만나면 스님이라고 불러."

자궁암 말기의 내 친구, 낙엽은 계절이 쓰는 유서가 아니라 별에 닿기 위한 유일한 통로라며 활짝 웃는다.

 

 


 

 

오명선 시인 / 花無十日紅

 

 

하늘 아래

몸뚱이를 열어 본 죄

함부로 체취를 흘려 유혹한 죄

하여,

지지 않는 꽃은 없다

 

오명선 시집 『오후를 견디는 법』, <한국문연> 2 에서

 

 


 

오명선 시인

1965년 부산에서 출생. 부산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9년 《詩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후를 견디는 법』이 있음. 2012년 인천문화재단문화예술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