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호 시인 / 당돌한 시
당돌하다는 말의 끝은 분별없거나 모질지 않다 느슨함을 파고들어 문득, 우리를 새롭게 하는 깨우침 한입에 넣고 씹기에는 부담스러운 불그스레한 풋고추 한 접시 대문을 열고 안방까지 곧장 들어오지만 문고리를 뜯거나 창문을 부수는 법이 없는 언어들 중개상이나 상점 진열대를 거치지 않고 거품 없는 가격에 직거래되는 감수성 당돌하다는 말속에는 새롭지 않고는 상하기 쉬운 야무진 시 하나 들어 있다
윤석호 시인 / 버티다 무너지는 것들에 대하여
버틴다는 말을 무너졌다는 말로 결말지을 수 있나
꽃 피면 할 수 없이 화려함으로 버텨야 하고 새들도 한 음절의 노래로 하늘을 버티며 날아간다 쭈그러진 아버지가 홀로 누워 생을 버티는 동안 아버지의 구두는 허기로 벌어진 입을 적막으로 버티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버틴다는 동사의 목적어를 물어볼 수 있나
막 떨어진 낙엽을 들여다본다 이렇게 곱고 섬세한 잎들도 때가 되면 가지를 놔 준다 목련도 미련처럼 보이기 전에 스스로 꽃의 목을 자른다 사랑조차도 견디는 일이란 것을 알아차린 듯 어둠 속 별 하나 스스로 화장하며 별똥별로 지고 있다
버티던 것들만 무너질 수 있다 세상의 하루를 담담히 버텨 내고 해가 벌겋게 서쪽으로 무너지고 있다 시간과 장소가 지워진 기억 몇 개만 차갑게 밤하늘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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