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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석호 시인 / 당돌한 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28.

윤석호 시인 / 당돌한 시

 

 

당돌하다는 말의 끝은

분별없거나 모질지 않다

느슨함을 파고들어

문득, 우리를 새롭게 하는 깨우침

한입에 넣고 씹기에는 부담스러운

불그스레한 풋고추 한 접시

대문을 열고 안방까지 곧장 들어오지만

문고리를 뜯거나 창문을 부수는 법이 없는 언어들

중개상이나 상점 진열대를 거치지 않고

거품 없는 가격에 직거래되는 감수성

당돌하다는 말속에는

새롭지 않고는 상하기 쉬운

야무진 시 하나 들어 있다

 

 


 

 

윤석호 시인 / 버티다 무너지는 것들에 대하여

 

 

버틴다는 말을

무너졌다는 말로 결말지을 수 있나

 

꽃 피면 할 수 없이

화려함으로 버텨야 하고

새들도 한 음절의 노래로

하늘을 버티며 날아간다

쭈그러진 아버지가

홀로 누워 생을 버티는 동안

아버지의 구두는 허기로 벌어진 입을

적막으로 버티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버틴다는 동사의 목적어를 물어볼 수 있나

 

막 떨어진 낙엽을 들여다본다

이렇게 곱고 섬세한 잎들도

때가 되면 가지를 놔 준다

목련도 미련처럼 보이기 전에

스스로 꽃의 목을 자른다

사랑조차도

견디는 일이란 것을 알아차린 듯

어둠 속 별 하나

스스로 화장하며 별똥별로 지고 있다

 

버티던 것들만 무너질 수 있다

세상의 하루를 담담히 버텨 내고

해가 벌겋게 서쪽으로 무너지고 있다

시간과 장소가 지워진 기억 몇 개만

차갑게 밤하늘에 남을 것이다

 

 


 

윤석호 시인

1964년 부산 출생. 2011년 미주 《중앙 신인 문학상》 당선. 201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4인칭에 관하여』가 있음. 현재 한국문협 워싱턴주 지부 회원, 시마을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