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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삼현 시인 / 종이 인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31.

조삼현 시인 / 종이 인형

 

 

가끔 입체감 없는 어린 시절이 튀어나오면 도화지 위에 당신을 그려 넣어요. 조심스럽게 목이며 몸통 을 오려내지요. 납작한 엄마가 태어났어요. 아주 작은 당신,

 

낯선 방에서 잠을 자요. 칠 벗겨진 뒤주 위 엄마 냄새가 나요. 딱딱하면서도 높은 그곳에서 새우잠을 구부리면 종이 인형이 자장가를 불러줘요. 크레파스로 색칠한 옷을 걸치고 나를 안아요. 심장에 묻어나는 그 붉은 소리,

 

아침이면 종이 인형이 월남치마를 입어요. 뒤주 속 바닥을 긁어 밥을 짓지요. 흰밥에 피어오르는 안개 같은 김, 얼른 커서 나도 엄마가 되고 싶어요.

 

하도 매만져 엄마의 살갖은 다 해졌어요. 그치만 두눈은 한 번도 감긴 적 없죠. 밤낮으로 피곤한 목과 팔다리, 하얀 밥풀로 너덜너덜해진 엄마를 붙여요.

 

 


 

 

조삼현 시인 / 죄와 벌 3

 

 

장맛비 내리다

잠깐 들려가는 여우볕은 수인囚人들의 것이다

병동 운동장에 낯빛 창백한 목발소년

잘린 다리로 풀밭 끌고 가는 방아깨비 같다

몸에서 쇠비름 냄새가 난다

먹구름 걸려있는 담장 밑 풀밭에서 이마를 땅에 대고

지금 네가 찾는 것은 무엇인가

타는 갈증 무엇이기에 손톱에

초록 물이 다 들도록 풀벌레의 노래라도 듣는가

가난한 너의 아비 어미가 한평생

온몸 닳도록

생의 밑바닥을 쓸고 닦아도 찾지 못한 꿈의 노래를 찾아서

사슬처럼 이어진 허기의 대물림을 끊긴

끊을 참인지, 찾아

낮은 음자리표의 서러운 세상

돌연변이를 꿈꾸는 것인지,

풀 향기 바람 있어 눈길 다가서자

감추는 듯 펴보이는 손에 네 잎 클로버 한 장

 

-조삼현 시인의 첫시집 <어느 수인에게 보내는 편지>

 

 


 

조삼현 시인

전남 영암에서 출생. 2008년 월간 《우리詩》로 등단. 시집으로 『어느 수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음. 현재 서울남부구치소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