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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인한 시인 / 지상의 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5.

강인한 시인 / 지상의 봄

 

 

별이 아름다운 건

걸어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들 위에

다시 집을 짓는

이 지상에서

 

보도블록 깨진 틈새로

어린 쑥이 돋아나고

언덕배기에 토끼풀은 바람보다 푸르다.

 

허물어 낸 집터에

밤이 내리면

집 없이 떠도는 자의 슬픔이

이슬로 빛나는 거기

 

고층건물의 음흉한 꿈을 안고

거대한 굴삭기 한 대

짐승처럼 잠들어 있어도

 

별이 아름다운 건

아직 피어야 할 꽃이 있기 때문이다.

 

 


 

 

강인한 시인 / 오늘

 

 

오는 날을 위한 꽃

꽃다움은

공명할 수 없는 항아리

속으로 지는

잎새.

 

지난날을 잊기 어려워

차마

버릴 수 없는

그 점을 두고

까악

까악

우짖는 갈가마귀.

 

 ― 배앵 돌다

아래로 떨어진다.

 

아아, 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날개를 퍼덕이다

가루 된

심장.

 

나갈 수 없는

구멍으로

바람

불어와

 

오는 날을 앗아 가는

항아리 안

벽.

 

 


 

강인한 시인

1944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 전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대운동회의 만세소리〉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이상기후』(1966), 『불꽃』(1974), 『전라도 시인』(1982), 『우리나라 날씨』(1986), 『칼레의 시민들』(1992), 『황홀한 물살』(1999), 『푸른 심연』(2005), 『입술』(2009) 등의 시집과 시선집 『어린 신에게』(1998) 그리고 시비평집『시를 찾는 그대에게』(2002)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