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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성혜 시인 / 호박넝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5.

장성혜 시인 / 호박넝쿨

 

 

밤새 광부였던 아버지가

때가 낀 스티로폼 상자에

썩어 들어가는 심장을 심는다

햇볕도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일흔의 마당에 줄이 매어진다

검은 탄가루가 박힌

떠돌던 몸에서 싹이 돋는다

솜털 보송보송한 순이 나온다

막장에서 쉬지 않고 올라오는 기침이

무성하게 줄을 타고 오른다

벽에 누런 가래 꽃이 핀다

덩굴손이 기를 쓰고

녹슨 안테나를 휘감아 오른다

오그라든 가슴이 링거줄에 매달려 있다

말라비틀어진 줄기

가망 없는 벽을 꽉 끌어안고 있다

누렇게 뜬 잎 사이에

시퍼런 주먹 하나가 맺혀 있다

 

 


 

 

장성혜 시인 / 아우라지를 건너며

 

 

 검은 개가 따라왔어요. 따라오지 마, 돌을 던졌어요. 검은 개는 먹구름 속에 숨었어요. 휘어진 소나무 위로 달아났어요. 징검다리 건너다 돌아봤어요. 검은 개는 보이지 않았어요. 주머니에 돌멩이만 쌓였어요.

 

 검은 개를 찾아다녔어요. 입을 열면 돌멩이가 튀어나왔어요. 누군가 가까이 오면 돌을 던졌어요. 흐린 편지를 뜯으면 비가 쏟아졌어요. 돌아보면 그리운 것들은 모두 건너편에 있었어요. 다시는 건널 수가 없었을 때, 내 몸 안에 어두운 강을 키웠어요.

 

 나는 검은 돌이 되었어요. 줄줄이 돌멩이를 낳았어요. 흐르다 내 어둠과 다시 만날 줄 몰랐어요. 강바닥에 내가 던진 돌멩이만 가득했어요. 먹구름이 꼬리를 쳤어요. 아우라지 물결이 따라오며 컹컹 짖었어요. 검은 개는 끝내 보이지 않았어요.

 

 


 

장성혜 시인

1957년 경북 봉화에서 출생. 197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2002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 2010년 제18회 전태일 문학상 시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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