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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신용 시인 / 돌에 관한 에피소드 1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5.

김신용 시인 / 돌에 관한 에피소드 1

 

 

 돌도 마스크를 하고 뒹구는 것 같은 날이다 코로나19 때문에 한산해진 거리를 걷는다 거리가 이안류에 휩쓸린 것 같다 바다 밑으로 보이지 않게 빠져나가는 빠른 물살의 흐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저 역류―. 기억해보면 불행은 언제나 이 물의 흐름처럼 온다 마치 싱크홀처럼, 모든 것을 비극으로 침몰시키는 거대한 상상력 같다 거리의 나무들도 방호복을 입은 채 비대면으로 서 있다 나뭇잎도 수어처럼 흔들린다 바람이 냉동트럭에 실린 시신의 감촉으로 살갗에 닿는다 상상은 무섭다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바이러스처럼 전신을 파고든다 공기도 무수한 시신들의 매장지로 변한 뉴욕의 하트 섬처럼 부푼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에피소드가 아니라 인류의 시간을 관통하는 거대 서사 된 오늘, 마치 이안류에 휩쓸린 듯 거리는 불안한 발걸음들로 삐걱이고, 어느 방향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비말을 두려워하며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들도 쫒기 듯 걷고 있다 박쥐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팬데믹 기원설이, 뒹구는 돌처럼 발길에 툭툭 차이는―, 예고도 없이 사람과 상점들이 대량 해고되는 거리, 이제 방호복을 입은 채 만나고 휴대폰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 하루가 정말 무분별한 농담 강박적인 말놀이 같다 들리지 않는 비명이 벽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압화 같다 거리가 압축 장치 같다 사람들은 벽에 박제처럼 붙은 그림자를 떼어내고 또 떼어내며, 그런 자신을 성난 얼굴로 돌아보듯 다시 오후의 거리를 허적허적 걸어간다 바람은 여전히 시신들을 실은 냉동트럭처럼 거리에 방치되어 있다 공기도 무수한 비말들의 거품처럼 부푼다

 

돌도 마스크를 하고 뒹구는 것 같은 날이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3월호 발표​

 

 


 

김신용 시인

1945년 부산에서 출생.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도장골 시편』  『바자울에 기대다』, 『잉어』 등과 장편소설『달은 어디에 있나 1,2』 『기계 앵무새』  ‘『달은 어디에 있나 1. 2』 <고백을 이 제목으로 재출간>, 『새를 아세요?』 등이 있음.  2005년 제7회 천상병문학상과 2006년 제6회 노작문학상,  2013년 제6회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과 같은 해 고양행주문학상 수상. 웹진 『시인광장』 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