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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진경 시인 / 코스모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6.

김진경 시인 / 코스모스

 

코스모스 속엔

유랑 곡마단의 천막과

나팔 소리가 있다

 

코스모스 속엔

까많게 높은 천장에서

아슬아슬 줄을 타는

곡마단의 소녀가 있다

 

코스모스 속엔

하얀 꽃송이

평그르르 맴을 돌며 떨어지는

물 맑은 우물이 있다

 

검은 물빛을 보며

나도 나팔 소리와 깃발 따라가는

떠돌이이고 싶었다

 

코스모스 속엔

하얗게 소름 마르는 길이 있다

 

시집 '슬픔의 힘」에서, 문학동네, 2004년.

 

 


 

 

김진경 시인 / 수묵으로 흐려져 가는 정물화처럼

 

 

다음 봄에는

부슬비라도 오시는 날 강변 집 마루에 앉아

눈처럼 날리는 벚꽃잎을 보며

그대가 막 걸러온 국화술을 마시고 싶군

나이 먹는 일이 뭉텅뭉텅 살덩어리를 떨어트리듯

욕망을 하나씩 버려가는 일이라

육탈이라도 하는 듯 몸은 나날이 소슬해지고 있으나

아직 떨치지 못한 머리가

지는 꽃잎과 나무와 나뭇가지에 내리는 비와

나를 까탈스럽게 구분하며 귀찮게 하니

지는 꽃잎과 나무와 내리는 비와

내가 하나가 될 때까지 마셔야겠네

그리고 그대 무릎을 베고 누워

어스름녘 강물 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그 보는 것조차 잊혀질 때까지 바라보다

수묵으로 흐려져 가는 정물화처럼

빗속으로 스러져간들 어떻겠는가

 

 


 

김진경(金津經) 시인

1953년 충남 당진 출생.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 시 당선. 고교 교사 재직 중이던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 2개월간 수감생활, 이후 교육운동에 투신. [오월시] 동인.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 등 역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통일시대교육연구소 소장 역임. 2000년 12월 시집 <슬픔의 힘>으로 제5회 시와시문학 작품상 수상. 2006년 『고양이 학교』로 프랑스 제 17회 앵코뤼브티블 수상. 2007 한국문학 시부문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