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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선안영 시인 / 얼룩무늬 하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7.

선안영 시인 / 얼룩무늬 하루

 

 

1

맨살의 두 다리를 스타킹에 넣는 순간

그물망에 갇힌 듯 파닥이며 저항한다

포획된 먹잇감처럼

불행이 감전되는

 

2

매일 매일 출발할 뿐 도착한 적 없으니

혀를 깨문 시간은 정글의 피 맛이 나

날쌔게 잭나이프 칼날처럼

나를 구겨 넣는 날

 

3

찔레 넝쿨 가시 속 비상 같은 흰 꽃피어

우거진 질문들을 받아쓰는 물웅덩이

패어진 길의 등짝에 또 얼룩이 꽃핀다

 

-선경해시문학회 창간호, <상상해시작해>

 

 


 

 

선안영 시인 / 천일홍 분홍

 

 

한 사람의 그림자에 벚꽃이 피어난다 꽃 속에 눈사람이 천천히 녹고 있다

심장을 허물고 있다 꽉 쥔 손을 펴고 있다

 

흰 눈꽃 녹아내린 물방울 소리 번진다 흘러왔던 물이 잠시 한 바퀴를 맴돌다

고요히 빠져 나간다 적멸을 향해 간다

 

타다가 만 연분홍, 타다 남은 흰 손가락 그 맹세가 나부낀다 둥둥 흘러 떠나간다

한 개비 성냥이 꺼지고 이제 영영 봄 밖이다

 

《시조시학》 2021. 겨울호

 

 


 

선안영 시인

1966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했다. 조선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등단. 시집으로 『초록몽유』(고요아침, 2008), 『목이 긴 꽃병』이 있다. 제7회 전국 금호시조 대상을 수상. 2008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수상. 2009년 무등시조문학상 수상. 2011년 서울문화재단 문학 창작기금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