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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효경 시인 / 금요일까지 여기 머물러요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7.

구효경 시인 / 금요일까지 여기 머물러요

 

 

이리와, 여기를 만져줘요.

상처가 매듭처럼 꽉 묶여있는 자리에 그 손가락을 짚어요.

한 번쯤은 태어나지도 않은 애기들을 걱정하기도 했지요.

어떻게 내 가슴팍으로 감각적인 주먹들이 쏙 들어올 수 있나 신기해하면서.

아마도 자리를 바꿔가며 구름과 동침하는 일몰에 대해

내가 거추장스럽게 고자질을 했단 걸

그 느끼한 주먹들도 다 알고 있었나 봐요.

고흐의 말동무가 되어주던 고갱도 없고

옷을 입은 마야도 옷을 벗은 마야도

나랑 상관없는 뭐야, 가 돼버리고만 적이 있어요.

언젠가는 태어날 아기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혼례는 조촐하게, 하객석은 무인승으로.

허벅지를 깨물며 적적해하는 강아지처럼

귀엽게, 낭랑하게 울고 싶었는데

내 상처에는 아무런 결혼식도 없었고

그리하여 혼자 아팠네요, 아프다.

내 가슴팍에 꽂히던 주먹들은 다 토실토실 알밤 같고,

웃음이 참 헤펐네요, 불쌍타.

주먹을 풀고 손바닥을 펴 보인 당신이 내게 원하는 건

내 상처 자욱이 위치한 명확한 자리.

성감대를 주무르듯 하지 말아요.

그대가 원하는 게 애무라면.

내가 원하는 게 위무라면.

예각으로 날이 곤두선 초록빛 태양과 붉은 파도의 불협화음에

우리가 마지막 침을 퉤앗! 뱉고 와요.

달짝지근한 슬픔과 밥그릇에 고봉으로 쌓인 고통의 멍에.

이름 모르는 고아가 자신의 나이를 잊어가듯, 통증을 잊어요.

환부를 쓸어달랬더니 되려 깨물고 달아난 손에 난

푸른 반점을 더이상 거론하지 말아요.

다독거리는 바람, 속닥거리는 맨드라미,

투덜거리는 캠핑카와, 타지 못한 웨딩카와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달아나는 닳은 그림자들

사이에서 어지럽게 멀미를 앓는 나의 육체는

신음을 뱉는 죽은 새의 조각품이 되었어요.

슬픔과 상처와 혼곤함의 모쥬망,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애기들의 난산을 예고하며

그림자를 닮아가는 하얀 태양의 눈물에도 나는 여전히 아파서

이리와, 여기를 만져줘요.

입덧과도 같은,

애증과도 같은,

이리와, 여기를 만져줘요.

유산 당한 슬픔의 꽃들이 내 입술 위로 돋아나는

금요일까지 여기 머물러요.

 

웹진 『시인광장』 2022년 3월호 발표

 

 


 

구효경 시인

1987년 전남 화순에서 출생. 전남과학대학 화훼원예과 중퇴. 2014년 제3회 웹진 《시인광장》 新人賞 公募에 〈쇼팽의 푸른 노트와 벙어리 가수의 서가〉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현재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