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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명림 시인 / 무명 시인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7.

김명림 시인 / 무명 시인

 

 

 어깨 높이가 낮아지고 있는 남편 옆에서 불어터진 라면 한 가락도 안 되는 詩를 씁니다. 개도 냄새 한 번 맡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감나무 위 쑥떡새는 그것도 시가 되냐며 저희들 끼리 쑥떡 쑥-쑥떡 입방아 찧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남편이 노후를 걱정하며  애꿎은 담배 연기로 한숨을 삭이는 날엔 내 시는 더 외로워집니다. 늘 밝게 살아가라는 明林이란 이름, 향기 말간 시집 한 권 꽃 피울 수 있다면 내 노후는 키 작은 들꽃과 새들이 노래하는 밝은숲 속에서 무명시인으로 살아가도 좋을 듯합니다.

 

 


 

 

김명림 시인 / 시골버스

 

 

뱀처럼 꾸불텅꾸불텅 기어가듯 달려가는 시골버스

 

장날도 아닌데 읍내 국밥집에서 반주라도 한 잔 걸치셨나

불콰하게 취기 오른 어르신,

곰방대 장단 맞춰 노래 부르시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삼천포로 빠져드는 음정 박자

 

봄여름을 잉태했던 황금 들판은 배가 만삭이고

알록달록 옷을 입고 갈바람 연주로

낭창낭창 춤을 추는 코스모스 아가씨

 

자연이 그린 풍경 속을 느릿느릿 달려가네

마을을 지날 때마다 딩동 딩동 안부를 묻고

지난 장날 안 보이던 독거노인 팽 영감

빈집이 또 한 채 늘었겠네

 

사는 게 별건가,

바퀴가 굴러가듯 굴러가면 그만이지

시골버스 오늘도

관절염 앓는 다리 질질 끌며 룰루랄라 달려가네

 

 


 

 

김명림 시인 / 연탄 위의 붉은 벽돌집

 

 

밤새워 쓴 ‘연탄을 갈면서’라는 詩가 머릿속에 각인되었던지

어느 시인의 시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을

연탄 위의 붉은 벽돌집으로 올렸네

詩를 올리고 채 몇 분도 안 되어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네

언덕 위에 붉은 벽돌집이 연탄불에 타들어 가는 걸

119에 신고하여 불을 끄긴 껐는데

그놈의 활활 타오르는 웃음보따리,

불길 잡히지 않는다며

불 끄는 일 삼십 년 만에 그렇게 지독한 불은 처음이라고

소방관 아저씨, 애꿎은 연탄재 발로 냅다 찼는데

때맞춰 언덕을 오르던 O 시인과 C 시인 머리에 맞았네

화가 난 O 시인,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버럭 소리 지르자

옆에 있던 C 시인,

연탄 위에 붉은 벽돌집 지은 사람

표절 죄로 고소한다며 으르렁거리네

 

* 안도현 시인의 시 인용

 

 


 

김명림 시인

강원도 양구 출생. 2011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 『어머니의 실타래』 『내일의 안녕을 오늘에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