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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삼현 시인 / 지구본 택배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6.

<동시>

윤삼현 시인 / 지구본 택배

 

 

지구본을 꺼내다가

상자에 박힌 글귀를 꼼꼼히 읽었다

 

-조심히 다루어 주세요

74억 명이 이 안에 숨 쉬고 있으니까요

 

- 직사광선, 화기 등에 가까이 놓지 마세요

극지방이 녹아 해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바닥에 살살 놓아주세요

자칫 지진 소동이 날 수도 있습니다

 

- 정밀한 공법으로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지구별은 오래오래 지속되어야 하니까요

 

-한국 일본 사이 바다를 '동해'로 표기하였습니다

지구본은 진실이 생명이니까요.

 

 


 

 

윤삼현 시인 / 뒤돌아보기

 

 

골목길을 걸을 때

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어쩌면

강아지 한 마리

쫄랑쫄랑 내 뒤를 따라올지 모르니까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어 줄 거다

 

친구랑 헤어져 집으로 향하다가

마음이 당겨 뒤를 돌아본다

그때

친구도 그 자리 우뚝 서서

내 뒷모습 지켜보고 있을지 몰라

눈 마주치면 찡긋 웃어 줄 거다.

 

 


 

 

윤삼현 시인 / 블랙홀

 

 

너나 없이 빨아들여 삼켜 버린다

 

우리 집은 밥 먹을 때도 꼭 쥐고 산다

엄마는 잠자리에서까지 알람을 켜고

그의 지시를 받는다

 

학교가면

선생님도 친구들도 초긴장이다

수업시간 튀어나오는 깜짝 소리 하나

숨소리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지하철 승객 일시에 빨아들이고

길 걷는 사람들 최면을 걸어 삼켜 버렸다

한번 빨리면 빠져나오질 못한다

 

 


 

 

윤삼현 시인 / 야망

 

 

플라스틱은 강하고 단단하다

덩치 큰 대야는 목욕탕이 되었고

축제 날 플라스틱은 수천 개 의자가 되었다

 

플라스틱은 야심찬 꿈을 꾼다

푸른 바다로 먼 여행길에 오른다

발길 닿는 곳마다 자손을 퍼뜨린다

바닷가 언덕을 플라스틱 비닐로 도배해 놓았다

넘실넘실 바다를 페트병 수억 개로 디자인해 놓았다

 

최종 꿈은 플라스틱 지구다

가슴이 막 뛴다

 

 


 

윤삼현 시인

1953년 전남 해남군 출생. (아동문학가) 조선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198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뻥튀기'로 당선.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 1986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1988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당선, 시집 <유채꽃 풍경><겨울새>, 동화집 <눈사람과 사형수> 등. 순천대학교 겸임교수. 녹조근정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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