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윤삼현 시인 / 지구본 택배
지구본을 꺼내다가 상자에 박힌 글귀를 꼼꼼히 읽었다
-조심히 다루어 주세요 74억 명이 이 안에 숨 쉬고 있으니까요
- 직사광선, 화기 등에 가까이 놓지 마세요 극지방이 녹아 해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바닥에 살살 놓아주세요 자칫 지진 소동이 날 수도 있습니다
- 정밀한 공법으로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지구별은 오래오래 지속되어야 하니까요
-한국 일본 사이 바다를 '동해'로 표기하였습니다 지구본은 진실이 생명이니까요.
윤삼현 시인 / 뒤돌아보기
골목길을 걸을 때 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어쩌면 강아지 한 마리 쫄랑쫄랑 내 뒤를 따라올지 모르니까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어 줄 거다
친구랑 헤어져 집으로 향하다가 마음이 당겨 뒤를 돌아본다 그때 친구도 그 자리 우뚝 서서 내 뒷모습 지켜보고 있을지 몰라 눈 마주치면 찡긋 웃어 줄 거다.
윤삼현 시인 / 블랙홀
너나 없이 빨아들여 삼켜 버린다
우리 집은 밥 먹을 때도 꼭 쥐고 산다 엄마는 잠자리에서까지 알람을 켜고 그의 지시를 받는다
학교가면 선생님도 친구들도 초긴장이다 수업시간 튀어나오는 깜짝 소리 하나 숨소리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지하철 승객 일시에 빨아들이고 길 걷는 사람들 최면을 걸어 삼켜 버렸다 한번 빨리면 빠져나오질 못한다
윤삼현 시인 / 야망
플라스틱은 강하고 단단하다 덩치 큰 대야는 목욕탕이 되었고 축제 날 플라스틱은 수천 개 의자가 되었다
플라스틱은 야심찬 꿈을 꾼다 푸른 바다로 먼 여행길에 오른다 발길 닿는 곳마다 자손을 퍼뜨린다 바닷가 언덕을 플라스틱 비닐로 도배해 놓았다 넘실넘실 바다를 페트병 수억 개로 디자인해 놓았다
최종 꿈은 플라스틱 지구다 가슴이 막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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