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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오광석 시인 / 샐러리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6.

오광석 시인 / 샐러리맨

 

 

시곗바늘이 위아래로 기지개를 펼 때 활동을 시작하는 그를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이렇게 불렀네 샐러드와 맥주를 좋아해서 부르기도 하고 슈퍼맨과 인척지간으로 여겨 부르기도 하는데 보통사람과 확연히 다른 특성을 가졌네

 

매일 동일한 행동을 반복한다던가 하루 두 끼만 먹는다던가 두드러지는 건 활동하는 동안 소모되는 에너지로 스트레스를 생산하네 과잉 생산되어 재고가 쌓이면 간혹 발작이나 우울 증세 등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도 하지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동안은 재고가 쌓이기 전 담배나 커피를 에너지로 전환하여 재충전하네 며칠에 한 번은 알코올을 대량 섭취하여 쌓인 스트레스를 녹이거나 토해내어 말끔히 비우기도 하네

 

가끔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하네 며칠을 잠을 안 자기도 하고 불가능한 미션을 완료하기도 하며 위기 상황이 오면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거리로 나서네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이란 없는 능력자로 여기는데 천의 얼굴을 가진 건지 딱히 누구라고 지칭하기가 어려운 그는 어디에든 나타나네

 

 


 

 

오광석 시인 / 책 속에 거미가 산다

 

 

가늘고 긴 다리를

얇은 종이와 종이 사이에 걸치고

거미줄을 엮어 새집을 짓는다

책갈피처럼 종이 사이에 걸치고 선 거미는

책 속의 주인공처럼 살고 싶어

구석진 중고 세상 낭만적인 삶을 찾아온 거

그리하여 자기 몸처럼

구부정한 글자들과 어울려

기다란 문장 같은 집을 짓는다

이 낭만 거미는 하고많은 책들 중에

하필 시집을 골랐을까

시집을 집어 가면 집도 무너질까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거미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거

돈의 세상에 하등 쓸모없는

시편들만 나풀거리는 구석진 시집은

결코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숨 막히게 변해 가는 바깥 세계를 떠난 채

은유의 숲이 되어 잊힐 거라는

시집들과 어울려 지은 거미집은

한 편의 시집처럼 보일 거라는

 

 


 

오광석 시인

1975년 제주 출생. 2014년 '기괴한 자장가' 외 4편으로 계간 《문예바다》신인상 을 수상하며 등단. 제주작가회의 회원. 한화손해보험 근무. 한라산문학 동인 활동 중. 시집 『이계견문록』. 『이상한 나라의 샐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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