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최호남 시인 / 투명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7.

최호남 시인 / 투명

 

 

누가 나를

이렇게 환하게 들여다보고 있을까

투명 속은 언제나 투명 밖이니까

투명이 앞 지른다

 

비는 점점 많이 내린다

그칠 줄 모른다

투명은 어제이거나 아주 먼 이야기

그것은 늘 확실하고 투명 하다

 

투명이 포개진다. 투명 아래로

투명 이 겹쳐진다 투명 위로

투명이 금 간 오후를 적신다

숨어 있는 투명은 늘 술래다

비는 온몸이 비에 젖어 걷는다

비가 온다 비는 잘 걷지 못한다

 

오래 전에 떠난 너

여전히 투명 밖에 서 있고

언제나 기억이 나지 않아

과거는 투명이니까

빠져 나가버린 투명한 비밀이니까

 

 


 

 

최호남 시인 / 호모 에렉투스

 

 

잠이 잠을 잊어 버린다 발목을 잃어버린다

내릴 역이 잠이 든다 이어폰이 잠이 들면

내려도 안 내려도 괜찮아 좌석이 없어도 괜찮아

지하철에서도

 

손잡이를 잡을까 의자를 잡을까

흔들리는 잠

몸이 되려던 잠이 지느러미가 된다

 

문이 열리면 지루하고 바짝 마른 목소리는 새가 되고

바람이 되지

두 팔을 들고 동시에 두 발을 들고

꼬리 부터 부딪쳐도 괜찮아

머리부터 부딪혀도 괜찮아

 

바람은 얼마나 단단한가

한 달음에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뛰어내린 다 발목 없는

새가 다음 역을 향해 바람처럼 달리고 있다

선로를 걷는 선로처럼

 

 


 

 

최호남 시인 / 청계산

 

 

윗도리 가을부터 입고

 

아랫도리는 봄부터 갈아입는다

 

-시집 『정지는 아름답다』 (2019, 시와세계)

 

 


 

최호남 시인

전북 고창 출생. 동국대학교 전산과 졸업. 2019년 《시와 세계》로 등단. 시집 <당신 얼굴>, <정지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