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남 시인 / 투명
누가 나를 이렇게 환하게 들여다보고 있을까 투명 속은 언제나 투명 밖이니까 투명이 앞 지른다
비는 점점 많이 내린다 그칠 줄 모른다 투명은 어제이거나 아주 먼 이야기 그것은 늘 확실하고 투명 하다
투명이 포개진다. 투명 아래로 투명 이 겹쳐진다 투명 위로 투명이 금 간 오후를 적신다 숨어 있는 투명은 늘 술래다 비는 온몸이 비에 젖어 걷는다 비가 온다 비는 잘 걷지 못한다
오래 전에 떠난 너 여전히 투명 밖에 서 있고 언제나 기억이 나지 않아 과거는 투명이니까 빠져 나가버린 투명한 비밀이니까
최호남 시인 / 호모 에렉투스
잠이 잠을 잊어 버린다 발목을 잃어버린다 내릴 역이 잠이 든다 이어폰이 잠이 들면 내려도 안 내려도 괜찮아 좌석이 없어도 괜찮아 지하철에서도
손잡이를 잡을까 의자를 잡을까 흔들리는 잠 몸이 되려던 잠이 지느러미가 된다
문이 열리면 지루하고 바짝 마른 목소리는 새가 되고 바람이 되지 두 팔을 들고 동시에 두 발을 들고 꼬리 부터 부딪쳐도 괜찮아 머리부터 부딪혀도 괜찮아
바람은 얼마나 단단한가 한 달음에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뛰어내린 다 발목 없는 새가 다음 역을 향해 바람처럼 달리고 있다 선로를 걷는 선로처럼
최호남 시인 / 청계산
윗도리 가을부터 입고
아랫도리는 봄부터 갈아입는다
-시집 『정지는 아름답다』 (2019, 시와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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