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언주 시인 / 엘리베이터
어두운 하늘 위로 위로 올라간다. 나는 지금 천국에 간다. 어릴 때 동네 할머니들은 꽃상여를 타고 갔는데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다. 하늘이 가까운 아파트 17층. 이곳에선 아기별 꽃이 한 철도 못 넘긴 채 기진해 죽지만, 버튼 하나로 푹 꺼진 빵을 부풀릴 수 있다. 리모컨으로 당신과 내 날카로운 발톱 사이를 빠져나간 태풍의 흔적도 눈치 챌 수 있다.
가끔 하늘에 달을 쏘아 올린다. 몸뚱이 한쪽이 베여 걸리는 달. 누군가의 영혼을 싣고 비행기가 더 깊은 하늘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버튼을 그곳까지 눌러 보지만, 엘리베이터는 미루나무보다 조금 높은 곳, 17층까지만 나를 올려다 놓는다.
시간의 컨베이어가 돌고 있다. 포장을 끝낸 과자 봉지처럼 어느 지점에서 나는 그렇게 툭 떨어질 것이다.
심언주 시인 / 4월아, 미안하다
4월아, 미안하다. 진달래꽃들에게 더 미안하다. 펜을 들고 더 미안하다. 3월을 지나온 바람아, 잘 가.
K 시인에게 부칠 편지 끄트머리에 3월이라고 썼다가 '3' 자와 '월' 자 사이에 +1을 끼워 넣는다.
3+1 3은 귀만 같은데 1은 무심히 귀를 베는 면도날 사과 엉덩이를 베는 시큼한 칼날 개미허리 위 구둣발 아래 봄은 피는데 브래지어 곁 넥타이 사이 꽃은 피는데
쉬잇, 쉿 말을 쪼개고 구름을 가르고 입술 앞 검지가 너를 겨누고 있는 중이다. 미안하다. 남산 끝 4월 하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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