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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천순 시인 / 귀고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7.

박천순 시인 / 귀고리

 

 

마음을 나뭇잎 모양으로 오린다면

어느 쪽이 먼저 물들까

 

침상에 노부부가 마주 앉아 있다

 

습자지처럼 가볍고 조글조글한 여자

납작한 허리가 반으로 접힌다

남자가 여자에게 미음을 떠먹인다

떠먹여도 넘겨지지 않는 미음이

어눌한 입가로 흘러내린다

 

남자의 마음이 타들어가며

먹어야 산다, 먹어야 산다

거듭 되뇌는 주문, 방바닥에 쌓인다

 

창밖에서 웅성대던 바람도 입을 닫은 저녁

 

빛바랜 나뭇잎 두 장 나란하다

말라가는 서로의 낯빛을

오래 곰삭은 눈빛으로 적시고 있다

 

먼저 물들었던 기억 놓지 않으면

어떻게 앞서 떨어질 수 있을까

 

 


 

 

박천순 시인 / 구름들

 

 

내 안에 구름이 산다

형태도 없고 머무르지도 못하는

구름이 떠돌고 있다

저물녘 골목을 지날 때

어둠이 스미듯 내게 스몄다

 

구름이 제멋대로이듯

내 감정도 제멋대로이다

먹구름이 머무는 자리엔 다가오지 마라 그대여

위험한 상처가 열리는 문

감성이 흘러내려

당신의 가방 속에 들어갈 수도 있다

방금 읽은 시집의 글자들을 흠뻑 적시고

지독한 자책을 키울지 모른다

 

수많은 구름의 감정이

당신을 흡수하고

풍경이 될지 모른다

 

구름 속엔 누군가 담겨 있다

내 안엔 누군가 담겨 있다

 

 


박천순 시인

1965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2011년 《열린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해변을 펼치다』(천년의시작, 2016)가 있음. 2015년 제7회 열린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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