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문예바다신인상 당선작 김상백 시인 / 설안雪眼
1.
눈 내리지 않았고 하여 당신도 오지 않았다 매서운 추위 탓인가 두꺼운 얼음장에도 금이 간다 꾹 꾹 마음바닥을 찍을 때마다 장대 휘청인다 조각얼음을 타고 건너가는 발 시린 자정
2.
익어 가는 꽁치의 雪眼 하얀 접시에 꼬리지느러미 그리고 또 머리 삐죽이 내민다 끝으로 밀려 가면 저처럼 발과 머리 허공에 내놓고 살아야 하나 곽시쌍부 달이 진 눈 속 어둠이 깊다
김상백 시인 / 서해
저무는 바다
반달 걸리면
떨어지는 단두대
자비의 칼날
온몸으로 물고
우우우-
번지는 속죄의 노을
김상백 시인 / 가벼운 장례
선풍기 저 홀로 돈다 연옥에서 부는 바람
울먹이던 세간들 비닐 수의를 마련했다
활짝 핀 꽃불 속 놀러나 갈까
가벼운 외짝 날개 나비를 타고
뒤바뀐 자전축 거꾸로 돈다
김상백 시인 / 그리운 성혈사
원 안에 들어가도 죽고 나와도 죽는데 어떡하면 살 수 있겠느냐
삭정이 하나 주워 큰 원을 그리면서 하시던 물음. 언젠가 다시 들르리라 생각했지만 먼 길이라 마음에 담고 살았습니다 처음 무심코 찾아가던 산길은 풀섶만큼 어렴풋했지만 산사의 불빛은 법문 총총한 별밭이었습니다 연못에 발이 빠진 다정은 아직 차 향기 그득한가요 차 시봉을 들려고 곱디곱게 머리 빗던 처녀 버드나무도 저처럼 이젠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겠지요 산신각 잿빛 기와를 닮아 가는 희끗한 새치 몇 가닥이 소백산 계곡물을 길게 길게 흘려보냈군요
토굴 같던 보살님 두꺼비 같던 상좌승 마을 아래로 하냥 구름을 띄워 보내던 행자스님 봉철 큰스님 보고 싶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동당과 서당 고시생들 불러 모아 날궂이 윷을 놀고 해맑은 다음 날 늙은 호박만 한 가슴을 한복에 감추고 올라온 서울 보살이 놓고 간 수박, 씨 뱉듯 던지신 화두는 유언처럼 남아 시창是窓이라 지어 주신 법명, 마음에 큰 구멍을 뚫고 작은 암자 성혈사 한 채 지으라는 뜻 이제사 알았습니다
달콤한 수박이 수박 맛에 있더냐 입맛에 있더냐
자꾸 성혈사가 그리운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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