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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금란 시인 / 새로 만들어진 낭만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8.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시’>

이금란 시인 / 새로 만들어진 낭만

 

 

죽은 새를 키우고 있다

 

새는 밤으로 된 거품 속 벌레만을 잘근잘근 씹었다

공중을 잃은 동공은 강물이 흐르지 않았고

부리 끝에 매달린 울음소리는 새장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절벽 끝에서

바람을 마셔버렸다

 

몸집을 부풀리며 먼 아침과 대서양을 향해

날개를 키우려 했던 시간은 꺾이고

갈 수 없는 계절의 꽃은 피었다 진다

어떤 날은 시간과 꽃이 피지 않고 시들었다

 

뒷걸음질 쳐도 떨어질 수 없는 낭떠러지

벽이 있고, 모든 벽은 시작되는 위치에 있다

부딪치는 세계는 항상 푸른색 화면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낭떠러지는 날아가서 도달하기에 가깝고 안전한 곳

 

드디어 아침이야

수북한 깃털을 쓸어모으고

상처뿐인 이마를 어루만져 주는 것은

오른 손 커피잔이 뜨거워 왼 손으로 옮겨가는

지극히 낭만적인 일

 

저녁이 오기 전

뒤를 돌아볼 수 없는 새는 목을 꺾었다

울지 않는 새가 우는 혀를 삼켰다

 

 


 

이금란 시인

전라북도 순창에서 출생. 2013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