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시’> 이금란 시인 / 새로 만들어진 낭만
죽은 새를 키우고 있다
새는 밤으로 된 거품 속 벌레만을 잘근잘근 씹었다 공중을 잃은 동공은 강물이 흐르지 않았고 부리 끝에 매달린 울음소리는 새장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절벽 끝에서 바람을 마셔버렸다
몸집을 부풀리며 먼 아침과 대서양을 향해 날개를 키우려 했던 시간은 꺾이고 갈 수 없는 계절의 꽃은 피었다 진다 어떤 날은 시간과 꽃이 피지 않고 시들었다
뒷걸음질 쳐도 떨어질 수 없는 낭떠러지 벽이 있고, 모든 벽은 시작되는 위치에 있다 부딪치는 세계는 항상 푸른색 화면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낭떠러지는 날아가서 도달하기에 가깝고 안전한 곳
드디어 아침이야 수북한 깃털을 쓸어모으고 상처뿐인 이마를 어루만져 주는 것은 오른 손 커피잔이 뜨거워 왼 손으로 옮겨가는 지극히 낭만적인 일
저녁이 오기 전 뒤를 돌아볼 수 없는 새는 목을 꺾었다 울지 않는 새가 우는 혀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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