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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유재영 시인 / 다시 월정리에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9.

유재영 시인 / 다시 월정리에서

 

 

정강이 말간 곤충 반점으로 울고 있는

 

등 굽은 언덕 아래 마당 넓은 집이 한 채

 

나뭇잎 지는 소리가 작은 창을 가리고

 

갈대꽃 하얀 바람 목이 쉬는 저문 강을

 

집 나간 소식들이 말없이 건너온다

 

내 생의 깊은 적막도 모로 눕는 월정리

 

 


 

 

유재영 시인 / 은유로 오는 가을

 

 

1

달빛이나 담아둘까 새로 바른 한지창에

누구의 그림에서 빠져나온 행렬인가

기러기 머언 그림자 무단으로 날아들고

 

2

따라 놓은 찻잔 위에 손님같이 담긴 구름

펴든 책장 사이로 마른 열매 떨어지는

조용한 세상의 한때, 이 가을의 은유여

 

3

개미취 피고 지는 절로 굽은 길을 가다

밑둥 굵은 나무 아래 멈추어 기대서면

지는 잎, 쌓이는 소리 작은 귀가 간지럽다

 

<개화> 2021. 제30호 - 제12회 이호우시조문학상

 

 


 

유재영 시인

1948년 충남 천안에서 출생. 1973년 박목월(시)과 이태극(시조) 추천으로 시문단에 데뷔. 시집으로 『한 방울의 피』, 『지상의 중심이 되어』,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 등과 시조집 『햇빛시간』, 『절반의 고요』, 4인집『네사람의 얼굴』 『네사람의 노래』 등이 있음. 중앙시조대상, 이호우문학상, 편운문학상, 가람상, 한용운 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