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휼 시인 / 달을 위한 레퀴엠
질문처럼 솟은 봉우리가 그믐이 되면 우린 원점으로 돌아가지 상처를 쥐고 꿈밖 쓸쓸한 허밍으로 사라져간 초승 절반의 실패를 살던 하현의 등엔 절벽만 놓이고 더는 밀려날 수 없는 그믐이 되면 꽃잎 흩날리는 꿈들은 검은 밤에 묻히지 삭망의 주기는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동안 그믐을 거쳐 간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농담들 너를 위해서라면 저 하늘의 달도 따다 줄게 계수나무에 앉아 떠밀려간 꿈들을 무망이 바라보곤 하지 은쟁반 위에 차갑게 식어버린 농담 당신이 구두를 벗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번지고 흘러 만월의 끝에 닿는 그믐이 되면, 세상 모든 농담은 어둠에 묻히지 만장을 두르고 내려오는 붉은 눈의 토끼들 쓸쓸히 짓무른 만가를 부르지
웹진『시인뉴스 포엠』 2022년 1월호 발표
김휼 시인 / 식물성 언어
여섯 살 심장 위에 검은 돌을 올려놓았다 식물로 분류된 이후 아이는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다 누군가의 시간이 멈출 때, 힘껏 내달리는 것들의 정처쯤에서 안개는 피어오른다 자꾸만 붙잡고 깊어지는 잠이 식물을 키우고 있다 여섯 살의 손과 스물세 살의 얼굴이 한 몸으로 누워 죽은 듯이 세상을 듣는다 뒤집힌 시간 속에서 출구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끈적거리는 끈끈이 풀 같은 피에 엉겨 붙어 어미는 시들어가고 있다 고요 속에서 잉태되는 차가운 침묵 간극이 길어질 때면 아이는 희번덕 눈을 뒤집어 고요를 쫓는다 만지작거리기 좋은 여섯 살의 손은 뿌리칠 수 없는 놀이동산의 티켓 같은 것 조용히 들여다보기 좋은 높이에서 팔락이는 잎사귀들의 문장으로 몽유의 시간을 새기고 있다
월간『현대시』 2022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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