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 / 안개톱
안개톱을 걷는다 발이 늪 속으로 빠진다. 늪은 내 시의 공간이다. 여기는 지금 오후 세 시, 안개가 짙다. 춘천은 안개공장이 있다고 어느 시인은 말한다. 안개 공장, 다소는 우울하고 다소는 낭만적이다. 낭만 속에서 우울 속에서 나는 부화한다. 어둠과 슬픔의 싹이 트기도 한다. 장폴 싸르트르는 "문학은 존재에 대한 물음"이라고 했다지? 50여 평생 그 물음의 길 위에서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다.
그래서 아프다. 마음이 아프고 뼈가 아프다. 털 많은 짐승으로 아프다. 그 아픔은 내 '슬픔의 정체성인가 종이학처럼 허공에서 떠도는 수의(囚衣)인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행자(行者), 내 발의, 내 몸의, 내 언어의 변곡점은 어디인가? 안개에게 묻는다 강물에게 묻는다
계간 『시산멕』 2021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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