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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성선경 시인 / 쭈쭈글한 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0.

성선경 시인 / 쭈쭈글한 길

 

 

봉급날 라면 한 상자 샀다.

갑자기 부자다.

배고픈 사자같이 생긴 상자를 북

찢는데 상자 골판지가 쭈글쭈글 주름졌다.

늙은 살같이 주름진 것은 다 고달프다.

 

골판지는

쭈글쭈글한 할머니 손으로 모은

신문지 등 폐지로 만든다는데

생의 끝도 주름졌다. 파란만장

현생이 주름지면 다음 생도 주름질까?

 

냄비에 물을 올려놓고

라면 한 봉지를 척 끓이는데

꼬불꼬불 주름졌다.

나는 후루룩 후루룩 주름살을 마셨다.

아마 내 살도 이미 주름으로 채워졌으리라.

마흔일곱이 벌써 고달프다.

 

 


 

 

성선경 시인 / 별이 빛나는 밤에

—1889년, 고흐

 

 

네 눈동자, 네 눈동자, 또 네 눈동자

온 하늘에 노랗게, 노랗게, 노랗게 또 네 눈동자

어디로 눈을 돌려도

네 눈동자, 네 눈동자, 또 노랗게

하늘 가득 몰려드는 눈동자, 네 눈동자

내 마음 캄캄 밤하늘 너무 어두워

더 빛나는 네 눈동자

온 하늘에 노랗게, 노랗게, 노랗게

네 눈동자, 네 눈동자, 또 네 눈동자

 

 


 

성선경 시인

1960년 경남 창녕에서 출생. 경남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바둑론〉 당선되어 등다. 시집으로 『널뛰는 직녀에게』, 『옛사랑을 읽다』, 『서른 살의 박봉씨』『몽유도원을 사다』등이 있음. 현재 마산무학여고 교사이며 『서정과 현실』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