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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상요 시인 / 누가 운동장을 퍼뜨렸을까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0.

임상요 시인 / 누가 운동장을 퍼뜨렸을까

 

 

물웅덩이가 날았습니다

 

흰나비야 두 번의 깜박임으로 불렀지 동료를 불렀어 눈 감으면 그가 감기고 생각 많은 모자가 어디로 갔을까 꼬리 긴 방을 줄게 죽은 새 모이를 줄게 나비야 이리 온, 왜 나비는 혀가 간지러운 뱀처럼 부릴 수 없지

 

어떤 별자리는 수박 냄새가 나고 어떤 깃발은 부화되어 날아갔지 나비를 부르면 다정함이 성장했어 커튼 나비 흰나비야 분홍색으로 차오르며 너는 날지 못하는구나

 

나의 눈알이 다치지 않고 너의 심장을 손질하는구나 어제 빼놓은 내 반지 거울 보는 반지 그는 올까 네 번의 휘파람으로 불렀어 철제 물고기가 태어난 듯 불렀어

 

페인트를 삼킨 즐거운 환자처럼

 

접시 나비야 불빛을 삼킨 날개 없는 나비는 왜 아이스크림처럼 웃지 않을까 여기 어딜까 달의 목을 깨물고 난간 끄트머리에 열망하는 나비야 꽃병처럼 목젖이 젖으면 굴뚝이 될까 각설탕 보리밭을 줄까 나비야

 

흐르는 나비 그리고 거짓말

 

-시집 『흐르는 나비 그리고 거짓말』 2021년 9월

 

 


 

 

임상요 시인 / 왜 녹색이 되나

 

 

소원이라고 말하면 녹색구두참깨요술램프 그런 따위 믿는 여덟 살 아이의 상상 속에 살게 돼

 

손톱에 까만 때를 숨기고 천천히 숨 쉬게 돼 나는 굴러다니는 헝겊, 목이 꺾인 끈적한 잠이 돼

 

소원은 식초 소원은 거짓말 소원은 죽어라 쥐새끼

 

팔뚝 굵은 주전자는 찌그러지고 쥐새끼 어디 있니 가슴바닥 후벼 파는 아버지는 왜 잇몸을 보이며 웃지 않을까 얼어 죽지 않을까

 

얼음새끼 얼음보따리 얼음 뒤뚱뒤뚱 날지 않는 거위는 독수리 형태로 날아오를까

 

소원은 볼 낮이 없고 소원은 똥 눌 때만큼 춥고 소원은 모릅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중얼거리는 소원은 왜 배부르지 않을까

 

고개 숙이면 그냥 소원일 뿐인데

 

화들짝 놀라는 양초를 좋아하면 양초는 나를 좋아할까 으깬 감자와 소스를 고루 섞는다면 나눌 수 없는 나는

 

불편한 선물처럼 배회하는 결과물일까

 

콧물을 삼키고 집의 온도는 검고 삐딱하게 자라지 않는 소원을 거꾸로 꽂았다가 다시 빼고 박수를 치면

 

엄마랑 갈래 아빠랑 남을래

 

 


 

 

임상요 시인 / 안부를 물으면 왜 소란스러울까

 

 

안부를 물으면 왜 소란스러울까

 

저 자가 나를 끌고갑니다 개 마냥 끌려가다가 입 속의 피가 숨고르기를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숨통이 울퉁불퉁합니다 녹슨 레일은 멈추지 않고 질문이 많습니다 귓속에서 악의 공기를 짜내는 환자도 많습니다

 

뒤틀린 짐짝처럼 밤을 옥죄고 나를 과시하고 돌부리를 잡고 분노를 주물러도 세울 수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환장하게 저 자 앞에 입마저 녹아내립니다 머저리 꼴통 귀를 펴면 어지러운 저 자의 웅성거림이 싫고

 

돌멩이를 들면 미친 돌멩이가 왕왕 거립니다 팔이 길어져라 달려도 속일 수가 없습니다 녹취할 수 없습니다 저 자의 구둣발 아래 가요 가라고요 개뼈다귀 같이 놓아주지 않고 꿈 속조차 살아갈 수 없습니다

 

소음 죽고 이념 죽고 썩어 자빠진 부처님도 죽고 아이고 어머니 더러워 퉤퉤 비곗살 저 자가 날 욕 보였습니다 저 자가 파리똥 같은 가래를 튀겼습니다 쪼그라든 내 자지를 툭툭 치며 세워 봐 병신 새끼

 

내 발톱을 뜯어냅니다 벽장을 부셔버립니다 유리가 다투어 쏟아지고 검은 방이 저절로 웃습니다 쪼다 같이 깨진 머리통을 짓밟고 어서 와요, 내 사랑 내 등에 꽂는 칼

 

 


 

 

임상요 시인 / 만두를 생각합니다

 

 

왁자하게 무덤 씨

두 손 모아 무엇을 원합니까

 

누군가 들어가고 닫힌 문을 두드리면 볼 수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의 용도를 생각합니까 다부지게 닫힌 만두를 생각합니까

 

깨진 거울 속에 깨진 내가 파묻히기를 바랍니다

 

바람을 닮아서 함몰되고 내가 사라졌기에 간직한 것들을 주워 담습니다

 

원뿔 검은 고양이 솟대를 냅다 던져주는 여러 모양의 먹이처럼

 

동생은 울고 할머니는 늙지 않으려고 울고 공간이 포개진 열쇠공 같습니다

육하원칙의 질문만 하는 열쇠공 말이에요

 

간절한 눈빛으로 자식의 발전을 요구합니다

 

여러 번 세고 세도 헤아릴 수 없는 다음 생입니다

 

귀걸이 한 쌍처럼 부부가 피어난다고 말하고 누구는 피가 흐른다고 말하고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무엇을 저토록 빕니까

 

 


 

 

임상요 시인 / 스프링

 

 

체취가 다른 감정이라니

 

웅크린 고양이의 자세를 배워갔다 잔이 배가 고프고 나는 오타처럼 흔들렸다 잔과 잔이 바꿔 앉아 춤을 췄다 스텝을 밟으며 더 커다랗게 물살을 일으켰다 춤의 소원은 함성과 같았다 몸집이 큰 허기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어느 별 자폐아처럼 중얼거렸다 꼬리 같은 감정이 통통 튀어올랐다 춤이 죄다 뒤틀리고 접시마냥 단물이 흐르고 저기는 누구의 자화상인가 반짝이는 보석함인가 둥글게 모여 왜 왜 묻고 나는 치켜든 목에 치이고 못 박힌 관처럼 치이고 춤의 주문은 뒹구는 바퀴 같았다 보폭을 기억하는 발과 발이 붙어서 발목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춤은 끝나지 않는 이명이었다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 가족처럼 사랑이나 장래 희망 같은 거 자세히 듣지 않았다 손톱 열 개로 나눠지는 봉숭아 꽃잎처럼 물드는 나라의 중심이여 잔은 어떤 결심으로 나아가는지 배고프지 않은데 오래 입 벌린 이유에 대해 당신은 아는가

 

 


 

임상요 시인

강원 삼척 출생. 2017년 《시인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흐르는 나비 그리고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