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용 시인 / 이를테면, 조개구이
조개구이를 먹다보면 조개가 날 먹고 있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입을 열고 혀를 자른단 말이지. 절대만 남은 껍질들도 데워줬으면 하는데 차가운 조개는 끔뻑끔뻑 소금물만 뱉어낸다. 아빠부터 하나 엄마가 둘 그다음은 누나에게 차례로, 내가 토한 약속을 지키라 는 듯
엄마의 믿음은 내 꿈에서 기인한대. 그러니까 언젠가 아주 작은 그래서 보이지도 않던 내가 아빠로부터 엄마에게 안긴 그 꿈, 나는 완벽해지겠다고 했지만, 사실 그게 대단한 건지 몰라 몸을 뒤집지 못해. 소금 깔린 사우나에서는 모래시계만 짧아진다, 째깍째깍 젓가락이 움직이고, 다들 거품 섞인 유언에는 관심이 없고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던 게 정답일지도 몰라. 드라마를 먹고 사는 아줌마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을 하나씩 지운다던데. 난 그게 안 돼. 마치 입 닫고 익어가는 조개처럼, 소금물만 꾸역꾸역 집어삼키면서
숨을 뱉는 거리만큼 기억할 수 있을까? 아니, 아니요. 전해야 했던 것들 쓰지 못한 것들 말할 수 없는 것들, 다 익은 너희는 이렇게 나 작아졌고 질투만 땅처럼 솟아 사방으로 튀는 소리를 낸다
내가 쓴 편지에는 상한 입만 담을게. 뜨거워 입이 닫힌, 소금물만 꾸역꾸역 눌러 담은, 이를테면
백승용 시인 / 답안지
시간을 딱 반만 접었다 두 손으로 받친 목소리가 무색하게 단물만 곱씹고는
눈 안 폭죽이 터진다 네 소리를 닮아 수염을 거꾸로 욱여넣는데 나이가 자란다
울어주세요. 사진기사처럼 여백을 훑고 눈 코 입은 없애고 비처럼 말하고 싶어 까만 청개구리가 됐다
타조알은 여전히 뛰어다닐까 철로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침목 냄새가 자꾸 찌르는데 입을 막았다, 습관적으로 불빛도 없는 기차가 터널에서 걸어 나온다
항상 사진을 찍는다 조리개가 닫히지 않았지만 하품이 났다
2017년 『서정시학』 신인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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