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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백승용 시인 / 이를테면, 조개구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0.

백승용 시인 / 이를테면, 조개구이

 

 

 조개구이를 먹다보면 조개가 날 먹고 있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입을 열고 혀를 자른단 말이지. 절대만 남은 껍질들도 데워줬으면 하는데 차가운 조개는 끔뻑끔뻑 소금물만 뱉어낸다. 아빠부터 하나 엄마가 둘 그다음은 누나에게 차례로, 내가 토한 약속을 지키라 는 듯

 

 엄마의 믿음은 내 꿈에서 기인한대. 그러니까 언젠가 아주 작은 그래서 보이지도 않던 내가 아빠로부터 엄마에게 안긴 그 꿈, 나는 완벽해지겠다고 했지만, 사실 그게 대단한 건지 몰라 몸을 뒤집지 못해. 소금 깔린 사우나에서는 모래시계만 짧아진다, 째깍째깍 젓가락이 움직이고, 다들 거품 섞인 유언에는 관심이 없고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던 게 정답일지도 몰라. 드라마를 먹고 사는 아줌마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을 하나씩 지운다던데. 난 그게 안 돼. 마치 입 닫고 익어가는 조개처럼, 소금물만 꾸역꾸역 집어삼키면서

 

 숨을 뱉는 거리만큼 기억할 수 있을까? 아니, 아니요. 전해야 했던 것들 쓰지 못한 것들 말할 수 없는 것들, 다 익은 너희는 이렇게 나 작아졌고 질투만 땅처럼 솟아 사방으로 튀는 소리를 낸다

 

 내가 쓴 편지에는 상한 입만 담을게. 뜨거워 입이 닫힌, 소금물만 꾸역꾸역 눌러 담은, 이를테면

 

 


 

 

백승용 시인 / 답안지

 

 

시간을 딱 반만 접었다

두 손으로 받친 목소리가 무색하게

단물만 곱씹고는

 

눈 안 폭죽이 터진다

네 소리를 닮아

수염을 거꾸로 욱여넣는데

나이가 자란다

 

울어주세요. 사진기사처럼

여백을 훑고 눈 코 입은 없애고

비처럼 말하고 싶어

까만 청개구리가 됐다

 

타조알은 여전히 뛰어다닐까

철로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침목 냄새가 자꾸 찌르는데

입을 막았다, 습관적으로

불빛도 없는 기차가

터널에서 걸어 나온다

 

항상 사진을 찍는다

조리개가 닫히지 않았지만

하품이 났다

 

2017년 『서정시학』 신인상 수상작

 

 


 

백승용 시인

2017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서정시학회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