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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원경 시인 / 윤곽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3.

김원경 시인 / 윤곽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

약속들이 머무는 곳에서

부글거리는 해변은 목이 늘어난 티셔츠 처럼 출렁거린다.

얼지 않는 슬픔을 위해

면사포처럼 막 깔리기 시작한 저 노을 구두는 축축하게 젖어 곧 벗겨질 것이다

 

해초처럼 다른 장소에서 서로를 기다리다가 지쳐버린 곳

 

연안처럼 숨을 쉬는

연인이 필요할 때

어떤 바깥은 섬진강에서 남해에 이르기까지

기억의 윤곽에서 불붙는 빛의 윤곽까지 밀려오고 버려지는 것들은 입에 경계를 문다

 

겨울은 왜 새가 될 수 없는 걸까

 

더이상 고백할 것도 변명할 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어느 별은 맨발로 뛰어내리고

전속력으로 뛰어내리고

지워지는 세상의 경계들과

비릿한 시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

우리의 간격은 늘 물컹했고

어떤 전쟁에도 맞닿는 생이 있다

바람의 손목과도 같이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며

잘못된 예보처럼, 붉은 거품처럼

나도 경계에 불과할 때가 있다

 

운명은 증명할 수 없다는 듯

이제 막 얼고 있었다는 듯

 

물이 들어왔다 사라진다

이제 올 시간은 아무것도 없다

 

 


 

 

김원경 시인 / 쓸모없어진 날에도

 

 

햇볕에 닿으면 사라지는 곰팡이처럼

젖은 채로 빈자리에 들어섰다가 거기서 혼자 메말라가는 것

그것 또한 사랑이다.

내 얼굴이 긴 것은

흘러내린 외로움이 고여 있어서다

초침을 바라보는 사이 나는 녹는다

너를 부르면 가슴이 쏠려

수심 깊은 강물이 흐른다

내가 매일 침을 삼키는 건 용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자연사(自然死)를 쓰고 있다

오늘 아침 비누처럼

매일을 조금씩

뼈의 가장자리만 환하게 남아

이상하고 외로운 소실점으로 가라앉는다

 

 


 

김원경 시인

1980년 울산에서 출생. 경희대학 국문과 졸업. 2005년 《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