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경 시인 / 윤곽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 약속들이 머무는 곳에서 부글거리는 해변은 목이 늘어난 티셔츠 처럼 출렁거린다. 얼지 않는 슬픔을 위해 면사포처럼 막 깔리기 시작한 저 노을 구두는 축축하게 젖어 곧 벗겨질 것이다
해초처럼 다른 장소에서 서로를 기다리다가 지쳐버린 곳
연안처럼 숨을 쉬는 연인이 필요할 때 어떤 바깥은 섬진강에서 남해에 이르기까지 기억의 윤곽에서 불붙는 빛의 윤곽까지 밀려오고 버려지는 것들은 입에 경계를 문다
겨울은 왜 새가 될 수 없는 걸까
더이상 고백할 것도 변명할 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어느 별은 맨발로 뛰어내리고 전속력으로 뛰어내리고 지워지는 세상의 경계들과 비릿한 시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 우리의 간격은 늘 물컹했고 어떤 전쟁에도 맞닿는 생이 있다 바람의 손목과도 같이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며 잘못된 예보처럼, 붉은 거품처럼 나도 경계에 불과할 때가 있다
운명은 증명할 수 없다는 듯 이제 막 얼고 있었다는 듯
물이 들어왔다 사라진다 이제 올 시간은 아무것도 없다
김원경 시인 / 쓸모없어진 날에도
햇볕에 닿으면 사라지는 곰팡이처럼 젖은 채로 빈자리에 들어섰다가 거기서 혼자 메말라가는 것 그것 또한 사랑이다. 내 얼굴이 긴 것은 흘러내린 외로움이 고여 있어서다 초침을 바라보는 사이 나는 녹는다 너를 부르면 가슴이 쏠려 수심 깊은 강물이 흐른다 내가 매일 침을 삼키는 건 용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자연사(自然死)를 쓰고 있다 오늘 아침 비누처럼 매일을 조금씩 뼈의 가장자리만 환하게 남아 이상하고 외로운 소실점으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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