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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성식 시인(예산) / 가족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3.

조성식 시인(예산) / 가족

 

 

 집에 들어서면 대문 옆에 헛간이 서고처럼 서 있는데 처마 끝에 도서 대여목록 카드처럼 여섯 자루의 호미가 꽂혀 있다. 아버지 호미는 장시간 반납하지 않은 책처럼 한번 들고 나가면 며칠씩 밤새고 돌아온다. 산비탈을 다듬는지 자갈밭을 일구는지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자루만 조금 길면 삽에 가까운 호미, 그 옆에 어머니 호미는 가장 많이 빌려 보는 연애소설 같다. 테이프 여러 번 붙인 표지에서 파스 냄새가 난다. 빛나는 손잡이에 밥주걱의 둥근 날을 가진 넉넉한 호미, 땅을 파는 일보다 아버지가 파 놓은 흙을 다시 훑어보는 돋보기 알 같은 눈 밝은 호미, 나란히 서 있는 아내와 내 호미는 주말이나 가끔 들고 나가는 장식용 백과사전, 철물점 쇳내도 가시지 않은 두 자루 쇳덩어리, 제대로 땅 한 번 파지 못하고 마늘이나 고구마 살점만 물어뜯는 날선 칼날, 그 옆에 장난처럼 걸려 있는 아이들의 호미가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밭에 나가실 때 말동무로 따라 나서는 동화책같이 착한 호미가 한집에 산다.

 

2008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조성식 시인(예산) / 벽시계의 얼굴

 

 

벽시계를 떼었다

동그란 얼굴이 벽에 새겨져 있다

파리똥도 안 묻은 얼굴로

똑딱이는 심장소리를 두근두근

얼마나 들었는지

금이 가있다

등 뒤에 서있는 일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시계를 떼어낸 자리가

창백하다 영정사진

걸었던 곳처럼

슬프다

 

 


 

조성식 시인

1967년 충남 예산 출생. 순천향대 국문학과 졸업. 1998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200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비무장지대 동인. 현 예산농협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