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효녕 시인 / 가을의 기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5.

이효녕 시인 / 가을의 기도

 

 

이 가을에는 더 사랑하게 하소서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흘러간 세월

푸른 하늘로 흐르는 하얀 구름 떠서

깨끗한 마음이 되게 하얗게 물들여 주소서

 

노랗게 단장했던 은행잎 떨어지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길이게 해주시고

살 섞듯 흔들리다 떨어지는 낙엽이라면

먼 나라 동화 속의 정다운 이야기처럼

추억의 이름을 모두 넉넉하게 새겨

열정의 사랑으로 아름답게 물들여 주소서

 

이 가을에는 더 사랑하게 하소서

아직 다 채우지 못한 빈 그림자 보이면

용서하는 마음으로 사랑 채워 주시고

넓은 마당 한 귀퉁이 국화꽃이 피면

사랑의 향기로 물든 그리움이게 하소서

 

잔잔한 가슴 골짜기에 푸른 강변의 갈대

외로움으로 흔들리면 고독한 영혼 보듬어

사랑을 부르는 손짓이게 하소서

 

상처 입어 기다림의 나무가 된 사랑이라면

참된 아픔도 마음 속 밀어로 만들어

별로 타오르는 기도소리로 남겨주고

마음속에 슬픔이 넘치면 귀뚜라미로 울어

사랑의 고뇌를 흩어놓는 종소리이게 하소서

 

이 가을에는 연인들에게

더 사랑하는 가을이게 하소서

 

 


 

 

이효녕 시인 / 파도 안에 새긴 마음

 

 

오후에 햇살 안고 몰려오는 파도

한순간 은빛의 몸놀림이

사랑하는 여자의 환희 가득한 몸놀림 같다

가슴 터지게 굽이쳐 밀려오는 푸른 물살 위

어느덧 섬 저쪽 갈매기 눈가에 가물거리고

바람 속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소리들

모래 위 맨발로 이르러 파도로 부서지니

이 자리에 너를 위한 등대 하나 세우고 싶다

여름 바다에 서서 물결 바라보면

아련히 들려오는 천년의 바람 소리

파도를 안고 해저음이 들려온다

내가 여름이면 언제나 바다를 바라보듯

바다도 여름이면 나를 바라보며,

지나온 인생살이 처럼 파도 만들까

하늘의 햇살이 갈매기로 몸부림치며 날아

비어진 가슴을 맴돌아 물결로 채울까

바람이 물결에 섞여 흐르는 불면의 바다

바다처럼 아주 넓은 사랑이고 싶다

외로운 사람 만나 파도로 빗발치는 사랑이고 싶다

햇빛의 미립자를 털어 파도 밀려들 때

바위섬에 갈매기 물결에 날개 적셔 바라보다가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수평선 위로 난다

하루가 가고 하루가 다시 오는 사이

파도로 밀려온 몇 개의 별이

사랑의 불빛 되어 마음 안에 반짝인다

 

 


 

이효녕 시인

1943년 서울 출생.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 공예과 졸업. 1989년 시 '바람으로 누운 갈대들'로 데뷔. 수상 : 1995년 한맥문학상 본상. 1998년 경기문학상 우수상. 2003년 한하운문학상 대상. 2003년 노천명문학상 대상. 2004년 고양시문화상 예술부문. 시집 『떠나도 아름다운 그대사랑』 등 9권. 소설집 『갈대는 지금도 흔들린다』 등 2권. 명예문학박사. (1943년~2021/6/6일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