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은 시인 / 곁
늦가을 꽃의 마알간 낯바닥을 한참을 쪼그려 앉아 본다 벌들이 날아든 흔적은 없고 햇살과 바람만이 드나든 흔적이 숭숭하다 퇴적된 가루 분분한 홀몸에 눈길이 가고 나도 혼자라는 생각이 정수리에 꼼지락대는 순간, 꽃 속 꽃이 내어준 자리에 뛰어들었다. 혼자 고요한 꽃은, 누군가 뛰어든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꽃은 순간 화들짝 놀랐지만 나도 저도 이내 맑아졌다 곁이리라 화엄華嚴이리라
신병은 시인 / 휴休
햇살들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팽나무, 무성한 그늘 아래 하루가 길다 그늘은 나무의 꽃이다 아침 해가 뜨면 피었다가 슬그머니 어둠 되어 사라지는 꽃 그늘이 그늘 속에 누울 때 꽃이 피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외진 동네 혼자 있어 고요한 정오 그때 팽나무도 꽃을 제 품으로 들이고 잠시 고요해지는 것이다 햇살과 바람처럼 팽나무는 제가 피운 꽃 속에 저를 맡기는 것이다
-신병은 시화집 <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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