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신병은 시인 / 곁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5.

신병은 시인 / 곁

 

 

늦가을 꽃의 마알간 낯바닥을

한참을 쪼그려 앉아 본다

벌들이 날아든 흔적은 없고

햇살과 바람만이 드나든 흔적이 숭숭하다

퇴적된 가루 분분한 홀몸에 눈길이 가고

나도 혼자라는 생각이 정수리에 꼼지락대는 순간,

꽃 속 꽃이 내어준 자리에 뛰어들었다.

혼자 고요한 꽃은,

누군가 뛰어든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꽃은

순간 화들짝 놀랐지만

나도 저도 이내 맑아졌다

곁이리라

화엄華嚴이리라

 

 


 

 

신병은 시인 / 휴休

 

 

햇살들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팽나무, 무성한 그늘 아래 하루가 길다

그늘은 나무의 꽃이다

아침 해가 뜨면 피었다가

슬그머니 어둠 되어 사라지는 꽃

그늘이 그늘 속에 누울 때 꽃이 피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외진 동네 혼자 있어 고요한 정오

그때 팽나무도 꽃을 제 품으로 들이고

잠시 고요해지는 것이다

햇살과 바람처럼 팽나무는

제가 피운 꽃 속에 저를 맡기는 것이다

 

-신병은 시화집 <휴>에서​

 

 


 

신병은 시인

1955년 경남 창녕 출생, 조선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및 동 대학권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1989년 《시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바람과 함께 풀잎이』(혜화당, 1990) 『꿈의 포장지를 찢어내며』(혜화당1994), 『강건너 풀의 잠』(혜화당, 2003) 『바람 굽는 법』(소리, 2006), 『잠깐 조는 사이』(고요아침, 2010)과 시화집 『2+1』(까치, 2005). 『휴』(고요아침, 2014)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