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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은수 시인 / 파적破寂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6.

박은수 시인 / 파적破寂

 

 

깊은 산사에서 우는 범종소리

우우우

뼛속까지 사무친 울음처럼

전율하는 허공 자지러지자

하혈한 달빛

천강에 낼앉아 파문 이는가

눈먼 땅 위

귀 열어 젖힌 병약한 무리들

그 가난한 떨림 속

달빛 향연에 녹아드는지

파동에 애를 태우는지

하도 애절하오만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단장斷腸에 주검만 하오리까마는

들까마귀 새까맣게 들앉아

까악까악 울어대는 밤

뭇사랑, 간곡하다

 

 


 

 

박은수 시인 / 대나무 바다를 지나며

 

 

서서 자는 바다가 있었다

뾰족 뽀족한 날 세우고

우뢰 같은 세파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공명의 아침을 깨우는

쩡쩡한 소리들의 은신처

피잿골 * 사람들의 이력이었다

 

이제, 죽간(竹竿)에 매달려 있던

파란 입술들의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다

쩍쩍 몸을 갈라 우는 메아리

소쿠리에 바쳐 들어 붉은 영산강에 띄웠는가

개벽의 날을 기다리던 죽세공들은

향해를 멈추고 그새 다 어디로 갔는가

누군가 버리고 간 녹슨 연장

먹구름 아래 머리 풀고 앉아 있다

 

죽순조차 눈먼 땅에 숨었다

산이 깎이고 대 뿌리 뽑혀 나가

땅이 벽처럼 일어서는

흐드러진 푸성귀들의 바다

담양 죽해(竹海)

 

*피잿골 : 담양 가마골

 

2005년 계간 "시선 가을호"에서

 

 


 

박은수 시인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홍익대학원 미술과 졸업. 2004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반쪽나무』(산맥, 2008)  경기문화재단기금 수혜. 현재 한국시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회원. 마포고등학교미술과 교사.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