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수 시인 / 파적破寂
깊은 산사에서 우는 범종소리 우우우 뼛속까지 사무친 울음처럼 전율하는 허공 자지러지자 하혈한 달빛 천강에 낼앉아 파문 이는가 눈먼 땅 위 귀 열어 젖힌 병약한 무리들 그 가난한 떨림 속 달빛 향연에 녹아드는지 파동에 애를 태우는지 하도 애절하오만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단장斷腸에 주검만 하오리까마는 들까마귀 새까맣게 들앉아 까악까악 울어대는 밤 뭇사랑, 간곡하다
박은수 시인 / 대나무 바다를 지나며
서서 자는 바다가 있었다 뾰족 뽀족한 날 세우고 우뢰 같은 세파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공명의 아침을 깨우는 쩡쩡한 소리들의 은신처 피잿골 * 사람들의 이력이었다
이제, 죽간(竹竿)에 매달려 있던 파란 입술들의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다 쩍쩍 몸을 갈라 우는 메아리 소쿠리에 바쳐 들어 붉은 영산강에 띄웠는가 개벽의 날을 기다리던 죽세공들은 향해를 멈추고 그새 다 어디로 갔는가 누군가 버리고 간 녹슨 연장 먹구름 아래 머리 풀고 앉아 있다
죽순조차 눈먼 땅에 숨었다 산이 깎이고 대 뿌리 뽑혀 나가 땅이 벽처럼 일어서는 흐드러진 푸성귀들의 바다 담양 죽해(竹海)
*피잿골 : 담양 가마골
2005년 계간 "시선 가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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