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곡 시인 / 강을 위한 기도
물속에서 은하수가 훌쩍인다 제 짝이 몹시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안절부절 못한다. 시원始原에서 한 몸인 그들이 지천의 생명을 위해 강과 은하수가 되었고 성년이 되어 합하는 날이 오늘 밤 이랬지 이미 별똥별을 보내 청첩을 했고 세상 피조물들은 연회복을 고르고 있다 달이 방해하는 날은 금욕 해 박힌 날은 부끄러워 고개 돌리고 들 뜬 연애를 해본 날은 정말 얼마 없었지
새벽, 응급실에 실려 간 제 짝이 혼을 빼앗긴 개구리 처럼 수술대에 올려져 있고 지금껏 구속을 모르던 삶이 굴욕에 몸부림치는 동안 명의들은 서로 강의 주인이라고 다툰다 뼈를 자를 것인지 살을 발라낼 것인지 외과적 회진만 대낮을 넘긴다
밤이 되면 은하의 물길이 이어져 둘이는 영원을 흐를 것인데 조급한 처방으로 영영 빛의 거리만큼 격리되고 말겠다 하객들이 옷을 입다 말고 숨을 죽이고 있다
이병곡 시인 / 달 김장하기
그믐밤에 달 씨앗을 심었습니다 한 뼘 밭에 꼭 한알 심었더니 벌써 알이 차 떠오릅니다 개가 짖습니다 보나마나 새벽잠 없는 엄마가 물주고 있지요 간밤에 서리가 왔습니다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 달을 건집니다 정말 내 그녀처럼 한아름 가슴에 안겨옵니다 조심스레 옷을 벗겨야죠 기러기가 뜯어먹다 만 전잎은 짚으로 엮어 처마 밑 메주 옆에 매달았죠 서로 맞간을 봐야 하거든요 아폴로가 앉은 자리는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아 소금으로 정성스레 닦으니 푸릇푸릇 그녀의 속살이 보입니다 어서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야지 구름과 바람을 넣고 빠알간 햇살을 섞어 버무려 보니 태양초보다 목젖이 더 훈훈합니다 계수나무 열매가 산초보다 더 가슴이 싸-한 줄 처음 알았지요 물론 장독에 담아야지요 달도 호흡해야 하잖아요 나는 목욕만 시키고 엄마가 치댑니다 그녀가 부끄러워 가슴이 씰룩쌜룩하지만 곧 내 아내로 숙성될 거예요 엄마 손때도 더하여 맛깔납니다 양로원 동서도 있고 애육원 손주녀석도 생각나겠지요 다 담고 나니 어둑한 하늘에 초승달 하나 또 떠오릅니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태래 시인 / 돼지밥바라기별 외 4편 (0) | 2022.08.27 |
---|---|
이문숙 시인 / 무릎이 무르팍이 되기 위해서외 1편 (0) | 2022.08.27 |
김하늘 시인 / 이상한 결핍 외 1편 (0) | 2022.08.27 |
정연홍 시인 / 수궁가외 1편 (0) | 2022.08.27 |
신정민 시인(전주) / 백엽상 외 1편 (0) | 2022.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