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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태래 시인 / 돼지밥바라기별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7.

임태래 시인 / 돼지밥바라기별

 

 

사람들에게

개밥바라기별이 있다고 한다면

나에게는

돼지밥바라기별이 있다

 

한여름 나를 낳은 엄마

돼지가 저녁밥 달라고

꿀꿀 보챌 때 태어난 나를

돼지처럼 잘 먹고 잘살 거라고 하셨다

 

초저녁 별이 빛난다

 

돼지밥바라기별을 낳으신 어머니

동방박사들 보았던 샛별보다

더 반짝거렸을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밥술이나 뜰 수 있는 게

그 별 덕분 아닌가

 

엄마는

오늘 밤 저 별을 바라보고 계실까

 

 


 

 

임태래 시인 / 자기소개서

 

 

파란 하늘 같이 맑은 사람

나무 같이 꾸꿋한 사람

들꽃 같이 웃는 사람

 

무엇으로 소개할까

 

그냥

이렇게 적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가슴 따뜻한 사람

 

 


 

 

임태래 시인 / 엄마처럼

 

 

오늘은

생강을 심고 짚을 덮었다

짚이 습기를 주지만

잡초도 막는다

그리고 썪어 거름이 된다

 

엄마처럼

우리 엄마처럼

 

 


 

 

임태래 시인 / 동창 딸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동창

그녀의 딸 결혼식에 축하해 주러 갔어

 

그곳에서 짝사랑한 그 소녀를 만났어

동창의 딸이 옛날 좋아했던 그녀로

다시 태어나 아름다운 신부로 서 있었어

 

신랑이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날이야

 

 


 

 

임태래 시인 / 쑥갓꽃·1

 

 

“시골에 살면 묵고 사는 건 걱정 업써야”

“쬐금한 땅데기 좀 있으면

상추랑 고추 쑥갓 좀 시므면 되야”

“한 여름철 밥맛 업쓰면

된장에 쌈 싸 먹으면 그게 최고여”

 

“도시에서 살기 힘들면 내려와라”

“도회지에서는 뭐 쪼금 살래도 다 돈 아니냐”

“힘들다고 아둥바둥 데지 말고

시골에 오두막하고 밭데기 쪼옴 있겄다

뭐 산 입에 거미줄 치겄냐”

 

오늘 텃밭에 쑥갓은 쑥쑥 자라고

한쪽에 곱게 피어난 샛노란 꽃

어머니 쓰신 호미 하나 걸려 있고

쑥갓 커가듯 그리움이 자란다

 

 


 

 

임태래 시인 / 쑥갓꽃·2

 

 

몇 년 전 강 건너신

어머니의 그리운 목소리

“얘야 이리 한번 나와 봐라!

쑥갓꽃이 참 이뻐야”

혼자 보기 아까워

날 부르신 거다

 

후다닥 뛰쳐나간 텃밭엔

금방 왔다 가신 듯

흔들린 쑥갓꽃에

엄마 냄새가 난다

 

 


 

임태래 시인

전남 보성에서 출생. 중앙대학교와 공주대 경영대학원 졸업. 2013년 《문학 미디어》 등단. 2015년 《수필과 비평》 등단. 2019년 《세종문학》 신인상 당선. 우암수필문학회. 세종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