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서 시인 / 춘분점
낮과 밤, 그 사이에 생략이 살고있나 호주머니에서 녹슨 동전이 튀어나온다 건너온 날짜들이 건너뛴 골짜기 같다
“겨울엔 나무의 영혼만 보여”* 그 말에 내가 잡혀 있는 동안 나무는 겨울을 떠나고 있었다 풍경만 남아 남은 겨울을 잡고 있었다
동서남북을 몰라도 좋아하는 방향쯤 있지 않겠니? 빈 종이를 들고 와 동서남북 놀이 하자던 친구는 부활절의 익은 달걀에서 장미를 꺼내주던 그 아이, 자라면서 안개꽃을 사랑했다 안개 밖이나 햇빛 속에서 우리 종종 그림자를 잊었다
춘망 춘몽 중얼대는 틈에 나를 비껴간 풍선 편지들 적도를 잘 지났는지, 안부의 발코니에 닿았는지,
문 하나 사이에 두고 밤이고 낮인 이곳을 생각하다 저 혼자 아름다울 외계행성의 명암경계선을 그려보다
종이 바람개비를 만든다 어제와 오늘을 빌려 태어난 감정의 이 낯선 신생아에게 쥐여 주려고
*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대사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2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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