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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미화 시인(서울) / 열매를 닮은 꽃은 없다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9.

이미화 시인(서울) / 열매를 닮은 꽃은 없다

 

 

꽃 필 때 목련은 눈이 없다.

 

하얀 플라스틱 같은 잎사귀에 저 목련의 향기 나는 울음

 

꽃은 해에게 눈을 다 빼주고 나서야 열매를 닮을 수 없다는 것을, 지난 해의 울음을 기억해 내지.

 

흔든 것에 흔들리는 울음이 있다면

계절을 우두둑 꺾어 불탔던 기억이 있는 꽃들은 눅눅한 재가 되고나서도 바람을 재연하듯 날리지.

 

색色이 들춰지는 바람의 순간이 있다.

 

검은 꽃잎은 없지만 검은 열매는 있다

눈을 먹은 꽃잎과 얼음을 먹은 열매가 있다

 

흔드는 것들은 흔들린 색만 얻을 수 있듯 꽃들은 단단한 허공에 귀를 대고 유언비어의 화기花期를 살지

 

바람은 서 있는 일이 없어 한 방향의 그늘로 얼굴을 삼거나 비린 맛으로 입에 들거나 흰 이빨처럼 그악하거나.

 

울퉁불퉁한 이빨자국이 선명한 꽃의 목덜미가 다 떨어지고

 

목련은 옷 벗은 일로 울고 이것을 열매 맺는 일이라고 하지만 꽃은 눈이 모자라서,

모자라서 그 울음을 다 울 수 없다.

 

 


 

이미화 시인(서울)

1959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졸업. 2011년 《현대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