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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상희구 시인 / 지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8.

상희구 시인 / 지붕

 

 

<북한산 자락에서 내려다 본 “1950년대

  성북구 정능2동(城北區 貞陵 二洞)의 평화로운 모습”>

이란 글귀가 있는 빛 바랜 사진 한 장

 

 

빨강, 파랑, 노랑, 하이얀 지붕들이 아주 정겨운데

유독히 눈에 띄는 한 모퉁이,

이상하게도 그 쪽 동네 아이들은 잠을 잘 때

엎어서만 자는지 게딱지같은 동그마한

초가들이 하나같이 납작납작 엎드려 있었다.

해서 뾰족지붕아래 사는 아이들이라고 성격이

모났다고 하지는 말 일

때로는 들고양이의 지름길,

다급해진 밤손님들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기도 하는 이것들

맙소사! 이른 아침 출근길에 집 앞을 나서니

지붕아래 빗물받이 홈-통 속으로 얼마나

엄청난 양의 빗물들이 콸콸 쏟아져 내리던지,

갓 지난 새벽, 천둥번개와 함께

그렇게도 사나운 비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잠 든 아이들 고운 꿈결 흩지 않으려고

이리도 곱게 그것들을 받아냈구나

 

 


 

 

상희구 시인 / 점점 어물어진다

 

 

올개 국민학교 3학년짜리

순돌이란 늠이 학교에 갈라꼬

책가방을 책기다가,

무망간에 지 에미한테 쫓아가서

에미 목덜미를 부등키안고는

 

-엄마야, 내 젖 좀 도고

 

칸다

 

에미가 하도 일치거이가 없어서

 

-이이고 야아가 와이카노?

내일 모레마, 장개로 가도 시원찮을 늠이

젖을 돌라이, 이기이 당최 무신 소리고

아이고 흉칙하고 남사시럽어라!

 

칸다

 

에미는, 인자아 얼마 인 있어

순돌이 늠, 친구 아아들이 학교에 가자꼬

딜이닥칠낀데 싶어서,

 

퍼뜩, 순돌이 늠 목안지를 우두바아 싸고는,

앞치매로 가라아놓고서 얼푼 젖을 한 모금

빨리고는, 아들늠을 학교나 빨리 가라고

후지차뿌는데

 

에미 나이 쉰이 다 되서

일태마, 쉰디이라 카기도 하는

쉰디이로 하나 떨가놓은 막띙이라,

알시럽은 마음에서

귀키 키아놓이

저래 철이 없는데,

뛰쳐나가는 아들늠 디통시롤

니리다 보민서 에미 걱정이 태산겉다

 

-아이고 우짯고!

저믄이 점점 어물어지네!

 

※‘점점 어물어진다’는 정신연력이 점점 퇴행하는 경우를 말한다.

 

 


 

상희구 시인

1942년 대구에서 출생. 1987년 《문학정신》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발해기행』(문학세계사, 1989), 『요하의 달』(문학세계사, 1996), 『숟가락』(천년의시작, 2008),『大邱』(황금알, 2012) 등이 있음. 1998년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현재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