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희구 시인 / 지붕
<북한산 자락에서 내려다 본 “1950년대 성북구 정능2동(城北區 貞陵 二洞)의 평화로운 모습”> 이란 글귀가 있는 빛 바랜 사진 한 장
빨강, 파랑, 노랑, 하이얀 지붕들이 아주 정겨운데 유독히 눈에 띄는 한 모퉁이, 이상하게도 그 쪽 동네 아이들은 잠을 잘 때 엎어서만 자는지 게딱지같은 동그마한 초가들이 하나같이 납작납작 엎드려 있었다. 해서 뾰족지붕아래 사는 아이들이라고 성격이 모났다고 하지는 말 일 때로는 들고양이의 지름길, 다급해진 밤손님들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기도 하는 이것들 맙소사! 이른 아침 출근길에 집 앞을 나서니 지붕아래 빗물받이 홈-통 속으로 얼마나 엄청난 양의 빗물들이 콸콸 쏟아져 내리던지, 갓 지난 새벽, 천둥번개와 함께 그렇게도 사나운 비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잠 든 아이들 고운 꿈결 흩지 않으려고 이리도 곱게 그것들을 받아냈구나
상희구 시인 / 점점 어물어진다
올개 국민학교 3학년짜리 순돌이란 늠이 학교에 갈라꼬 책가방을 책기다가, 무망간에 지 에미한테 쫓아가서 에미 목덜미를 부등키안고는
-엄마야, 내 젖 좀 도고
칸다
에미가 하도 일치거이가 없어서
-이이고 야아가 와이카노? 내일 모레마, 장개로 가도 시원찮을 늠이 젖을 돌라이, 이기이 당최 무신 소리고 아이고 흉칙하고 남사시럽어라!
칸다
에미는, 인자아 얼마 인 있어 순돌이 늠, 친구 아아들이 학교에 가자꼬 딜이닥칠낀데 싶어서,
퍼뜩, 순돌이 늠 목안지를 우두바아 싸고는, 앞치매로 가라아놓고서 얼푼 젖을 한 모금 빨리고는, 아들늠을 학교나 빨리 가라고 후지차뿌는데
에미 나이 쉰이 다 되서 일태마, 쉰디이라 카기도 하는 쉰디이로 하나 떨가놓은 막띙이라, 알시럽은 마음에서 귀키 키아놓이 저래 철이 없는데, 뛰쳐나가는 아들늠 디통시롤 니리다 보민서 에미 걱정이 태산겉다
-아이고 우짯고! 저믄이 점점 어물어지네!
※‘점점 어물어진다’는 정신연력이 점점 퇴행하는 경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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