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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나비 시인 / 나를 쇼핑하다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8.

김나비 시인 / 나를 쇼핑하다

 

 

올해 나는 201살

​매장을 누비며 나를 사는 것은

​언제나 두근거리는 일

​내 몸 각 부위의 만료일을 확인 하고

​기한이 다 된 부위부터 쇼핑을 한다

 

1구역에선

​시력7.0짜리 노란 안구와 8.7짜리 파란 안구를 산다 얇은 눈빛은 두꺼운 과거의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몸을 갈아입으면 고여 있는 삶이 출렁일까

 

2구역으로 향한다

​교차하며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지

난해 중고로 판 내 얼굴이 누군가의 몸에 달려

​무표정하게 나를 스치며 내려간다

 

입구에 발을 딛자 팔과 다리가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묶음 판매대에서는 팔다리 세트도 판다

​하나 값으로 두 개를 살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오늘도 나는 즐거운 리무빙을 하며

​익숙한 방식으로 나를 잃고 또 나를 얻는다

 

시집『오목한 기억』(고요아침, 2021) 중에서

 

 


 

김나비 시인

충북 청주 출생. (본명 김희숙). 청주대 국어국문학과와 우석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 2017년 《한국 NGO 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7년 《시문학》 등단. 201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수필집  『내오랜 그녀』와  『시간이 멈춘 그곳』. 시집 『혼인 비행 』(2020년), 『오목한 기억』. 2020년 안정복 문학상, 2021년 송순문학상 대상, 2021 사하모래톱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