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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성태현 시인 / 아득한 등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8.

성태현 시인 / 아득한 등

 

 

마지막 짐을 부려놓자 등이 가렵기 시작했다

창백하게 표정 잃은 등 뒤를 돌아본다

팔을 뒤로 돌려서 손바닥을 뒤집어봐도

손가락 끝은 거기에 닿지 않는다

긁어주지 않으면 조금씩 굽어갈 잔등

어깨의 죽지뼈가 서로 맞닿아서

굳건히 다지지 않으면 서로 어긋날 척추의 중심

움푹 패인 그곳은 그늘진 사각지대다

늘 그곳이 가려운 까닭은

활짝 벌린 두 팔과 손가락의 품이 좁아서

내 몸이지만 그 깊은 복판을 감싸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팔이 길어서 서로 털을 골라주는가

손길이 닿지 못하여 아득히 눈길만 머물러 있는 곳

혼자 병원에 다녀와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밥을 짓는 아내의 등이다

석 달 만에 찾아간 고향집

냉장고에 얼려두었던 조기 새끼 몇 마리

꼼꼼히 챙기시는 늙은 어머니의 굽은 등이다

구부정하게 집에 들렀다가 서둘러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서른한 살, 내 아이의 등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조차 전하지 못하는

먼 산굽이 너머 내 형제들의 등이다 그곳은,

 

밋밋하게 흘러내려 허전한 어깨

한순간 낡은 죽지마저 놓아버리고 싶은 저녁 무렵에

슬그머니 다가가 활짝 펼치고 싶은 등이다

 

-성태현 시집 <대칭과 타협의 접점> (2013. 詩와에세이)에서

 

 


 

 

성태현 시인 / 백미러의 오류

 

 

나를 통제하는 힘은 언제나 등 뒤에 있었다

덮칠 듯이 바짝 따라오는 등 뒤의 위협,

번쩍거리는 옆으로 물러서라는 신호

백미러를 들여다보았을 때

-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 있다

멈출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위기상황이다

저 언덕길만 넘어서면 거기 있을 것 같은,

아늑한 휴게소는 보이지 않는다

저항하는 바람을 향해 분풀이라도 하듯

가속페달을 밟지만, 더 이상 속력을 내지 못한다

목덜미에서 진땀이 흐르고 시야가 점점 흐려질 때서야

천천히 주생선을 벗어나서 갓길에 선다

나를 내몰던 위협은, 나를 무시하고 추월한다

출구 0.2km, 모든 상황은 끝나고

저녁햇살이 눈부시다

 

다음 휴게소 없음

경로의 마지막 휴게소를 그냥 스쳐 지나왔나 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다

- 세월은 달려온 속도보다 더 빠르게 흘러갔다

 

- 2014년 <시와 소금> 겨울호

 

 


 

성태현 시인

1954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 2006년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2008년 계간《시에》 신인상에 〈대칭과 타협의 접점〉 외 2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대칭과 타협의 접점』(시와에세이, 2013). 현재 시에문학회 회원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