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정 시인 / 우화(羽化)*
초록빛 누드가 기어간다 유연한 곡선의 리듬이 몸에 결을 새기며 간다 날개를 향한 동사들이 곡선 안에서 꿈틀댄다 주름들이 계절을 당기면서 간다 온몸으로 끌어당겨지는 먼 곳의 봄빛들
빈 가지에 매달린 주머니는 심심하다 동사들은 껍데기 안에서 차렷! 자세로 리듬이 ( )안에 갇힌다 곡선의 결들을 꿈꾸며 변신을 꿈꾸는 주머니가 딱딱해진다
지난 계절은 바람이 ‘딱딱하다’ 껍데기의 형용사를 벗고 누드에 날개꽃이 피어난다 우화羽花 유연한 곡선이 피어난다
욕실에 앉은 내가 지루한 형용사를 벗겨낸다 날개짓이 없는 나는 매일매일 불완전변태 중
* 우화(羽化) : 곤충이 유충 또는 약충이나 번데기에서 탈피하여 성충이 되는 일.
오혜정 시인 / 39분 3층이 젖는다
신촌 버거킹 3층이 이미 젖고 있었다. 한 창을 가득 채우는 9시 38분 속에 흐릿한 내가 앉아 나는 둘 (나와 또 다른 나, 두 얼굴의 응시) 여인 사이에서 비가 뒤척인다 레몬 아이스티, 카푸치노, 오렌지 에이드, 핫초코… 어깨를 기대고 앉은 남녀의 대화 속에서 뒤섞이는 비 젖어 있는 38분 3층 신촌 하늘 허리쯤에 창이 열린다 뒤척뒤척 여자의 얼굴을 타고 내려가는 투명한 입자 신촌의 허리 위로 금이 간다 금이 간 틈새로 설핏 어둠이 스친다 비는 39분 위로 달리고 컵 속의 차가운 ‘아이스모카’ 스푼으로 휘젓는 39분 3층이 젖는다.
*아이스모카 : 버거킹에서 판매하는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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