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영 시인 / 실험실에서 보낸 한 철
모든 현실은 꿈이다. 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를 꾸어 낸다. 이봐 몇 푼만 꿔 줘. 너는 지감을 열어, 몇 개의 나를 손바닥 위에 던져 준다. 간지러워, 손바닥에 금이 간다. 금이 몇 돈 모이면 장사라도 해야지. 손님 없는 밤엔 한 권씩 책을 먹고 바지에 나를 싼다. 창피하지 않아, 꿈이니까. 책 표지엔 늘 위태롭게 매달린 여자가 있다. 오늘은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자, 그러니 어서 뛰어내려. 동틀 무렵, 나는 그녀를 거뜬히 받아 낸다. 그녀는 부러진 두 팔을 엮어 작은 아이들을 만들어 준다. 아이들은 내 심장을 오도독 씹어 먹고, 실핏줄을 엮어 그네를 탄다. 웃는 얼굴로 나는 말한다. 힘들지 않아, 꿈인걸. 오래오래 참다가 침 대신 혓바닥을 삼키기도 한다. 어차피 나는 불가능했던 어떤 것. 머리가 깨지고 아이들이 운다. 괜찮아, 괜찮아. 아프지 않아. 이번 주말엔 낮잠 대신 어디 공원이라도 가 보자. 부스스 잠에서 일어나 아이들의 손을 잡는다. 날개가 돋는다. 눈을 감고, 나는 돌아오지 못할 충동으로 날아가고 싶다.
눈부시다.
아침부터 놀이공원을 덮고 있던 수많은,
송기영 시인 / 코끼리 접기-꽃의 비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나보다 훨씬 컸지요
내가 그를 꽃이라 불렀을 때 그는 물구나무 선 채 물을 빨았죠 물론, 과자를 주면 코로 먹지요
자주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진짜 꽃이 되었어요 이젠 전정가위가 필요할 것 같아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당신이 생각한 빛깔과 향기로 나의 이름을 불러 주세요
그게 뭐든, 有名한 당신에게 나도 불리고 싶어요
우리들은 모두 용도 변경하고 싶은 걸요 너는 당신에게 나도 당신에게 그러니까 불릴 수만 있다면, 매머드*도 괜찮아요
* 시방 위험한 짐승.
송기영 시인 / 또 하나의 가족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시큼털털한 맛이 난다. 시간으로 나누면,
베란다 밖 개나리는 T사 새들은 L사, 새소리는 이동통신 K사의 협찬이다.
S사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S사 자동차를 주차하면서 휴대폰의 전원을 끈다, 아버지 S사 전자레인지에 밀렵한 코뿔소를 넣고 2분 돌린다.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다. 어머니에게서 또 다른 어머니를 들켰는데, 용돈이 적었는지 아니면 사생활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서른 번째 딸이 일러바쳤다.
너희들 키가 7% 더 성장한 것은 모두 아버지 덕분이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타이른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아버지, 잘 익은 무소 잔등에 올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또 어떤 무엇이 아버지의 TFT에 낚여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막냇동생의 엄마가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또 하나의 정부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뭐? 누가 집을 나가, 이 밤중에
송기영 시인 / 샤갈의 花요일 밤
花요일 밤에 오세요. 맨발로, 펑펑. 화장이 번진 스텝도 좋아요. 하나, 둘 지붕을 걷고 턴테이블에 전원을 넣으면, 아주 오래된 왈츠에 맞춰 지구가 돌아요. 둥글둥글 왼쪽으로 도는 집시들. 죽은 엄마와 떠난 애인이, 실족사한 새들과 목 부러진 꽃들이 서로의 발을 밟으며 돌아요. 펑펑 오세요. 눈을 감으면 왼쪽으로 빙글빙글 감전되는 花요일 밤, 오세요. 왈츠를 추며 얼굴을 묻으러. 꽃삽은 필요 없고요. 전등 위에 손을, 손 위에 검은 구름을 깍지 끼고 함께 돌아요. 사뿐사뿐, 목을 매도 모른 척해 줄게요. 당신 걷던 자리마다 b플랫 단조. 베란다 창문을 열고, 하나, 둘 전원을 넣으면
왈츠에 맞춰 우리였던 얼굴들이 허공을 돌아요 맨발로, 핑 그르르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정순 시인 / 식물성 계절 외 1편 (0) | 2022.08.30 |
---|---|
윤영숙 시인(보은) / 문(門)앞에서 외 1편 (0) | 2022.08.30 |
이민숙 시인 / 카르페 디엠 외 1편 (0) | 2022.08.30 |
윤영숙 시인(홍성) / 지구에서 1cm 떨어진 사내 외 1편 (0) | 2022.08.30 |
김홍성 시인 / 아름다운 당신의 향기 외 1편 (0) | 2022.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