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숙 시인(홍성) / 지구에서 1cm 떨어진 사내
신문 한 뭉치 옆구리에 끼고 몇 걸음 앞서 돌계단 오르는 저 사내 구두 뒤꿈치가 움푹 파였다 한 계단 두 계단 발걸음 옮길 때마다 제 살 깎아내느라 힘깨나 쏟았을 구두 뒷 바닥, 허방이 체중을 받아 안는다 어느 광포한 시간의 이빨에 뜯겼을까 1cm 들린 채 떠 가고 있다 구두는 절개지 돌계단을 접었다 펴며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른다 푸른 지폐 몇 장 들이밀며 일 년 무료 신문구독권을 권해보지만 중천인데 마수걸이도 없다 구두 뒤꿈치 허방이 힐끗 내게 눈짓을 한다 이제 그만 따라오라는 것일까 저 非메이커 구두도 지구에서 사는 법 익히느라 헛심 뺄 때마다 등뼈 곧추세웠을 것이다 푹푹 꺼지는 중심 받아 안으려고 가랑이 진 종아리 근육을 바짝 조였을 것이다 바닥을 치고도 메워지지 않는 허무의 틈새 사라진 1cm, 사내가 공중부양 하듯 떠 있다
윤영숙 시인(홍성) / 하품탄
불발탄이 터졌다 뻣뻣한 턱 관절에서 종각이 풀려 나온다 교보빌딩 창문이 쏟아진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졸린 눈 부릅뜬 나와 딱! 눈이 마주친 순간 버스 후사경 속 입을 더 벌리지도 닫지도 못하는 저 운전기사 아저씨 썩은 이빨까지 적나라하게 보이네 우습지도 않네
내가 제일 먼저 폭탄을 집어삼켰네 하품은 중독성이 강하지 무장 해제된 승객들이 하품탄을 돌리네 심심했던 버스가 헛기침을 날리고 클랙슨 빵빵, 좌우 백미러 힐끔힐끔, 곁 눈질을 하네 몇몇은 파편처럼 흩어진 눈물을 닦아내다가 등받이에 묻혀 슬며시 눈을 감아버리네
옥탄가 높은 하품탄은 토막잠을 물고 버스를 둥실 띄워 올리는 거라 어느새 차창에 스믈여덟 쌍의 날개가 돋아나는 거라 버스는 운행 노선을 떠나 허공을 날아가는 거라 낯달을 따라가는 거라 우리 집이 성냥갑만하게 보이네 지구가 멀리 푸른 별로 떠 있네 이러다 하품탄이 떨어지면 우리는 별똥별처럼 떨어지고 거리 한 모퉁 이가 저수지처럼 움푹 파일 라나
끈질기게 달라붙는 하품탄이 깜박깜박 비상등을 켠다.
- (현대시학> 2010.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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