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 / 달은 어떻게 죽는가
낳는 순간, 산화된다는 예언 낳지 않으리라
산도를 빠져나온 순간 바닥을 차고 떠오를 하늘이 없는 권과 권, 편과 편 사이에 흘린 세상에서 달 무리로 질 연한 뼛조각들의 발길질을 참는 밤 해금 줄 끊어질 듯한 울음마저 주워 먹는 창백한 현실 내게는 이름이 없다, 너에게 줄 이름이 기운 침대 끝에서 외치는, 우리는 이름이 없다 가위 눌림을 견디는 내 뱃속은 비문 없는 달들의 영원한 공동묘지 편 편의 무덤 앞에서 오늘은 나도 내 몸이 무섭다
이은화 시인 /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닥나무 종이와 플라타너스 잎과 흰 벽은 손이 닿는 곳마다 놓였는데 정작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가방과 주머니, 수첩과 머릿속을 뒤져도 찾을 수 없다
어디로 간 것일까, 허구한 날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던 너를 잃고 별과 바람과 사랑을 낱낱이 고르던 손가락들이 불안을 노래하는 저녁
빨갛게 부어오른 손에 입을 맞춘다 맷돌을 돌리며 부르던 분홍 낭만들이 사라진 자리, 연적의 웃음이 나풀나풀 날며 근심을 조롱 하는데
한 소절을 위해 먹을 가는 쓸쓸함, 네가 없는 나는 돌에 지나지 않는다
백지로 앉아 불러보는 어처구니. 너를 잃은 지금 나는 여백이다 아니 공백이다 다정히 너를 쥐고 긋던 둥근 원 안에서 네가 만든 손의 상흔을 보듬는 시간
청잣빛으로 물든 길에서 표지를 불러보는 것이다 연금술로 빛나던 너를 기다리는 것이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영숙 시인(홍성) / 지구에서 1cm 떨어진 사내 외 1편 (0) | 2022.08.30 |
---|---|
김홍성 시인 / 아름다운 당신의 향기 외 1편 (0) | 2022.08.30 |
우진용 시인 / 나무 시인 외 1편 (0) | 2022.08.30 |
김윤환 시인 / 투명한 그물 외 2편 (0) | 2022.08.30 |
임재춘 시인 / 시작의 습관 외 2편 (0) | 2022.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