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윤환 시인 / 투명한 그물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30.

김윤환 시인 / 투명한 그물

 

 

엄마는 콜센터에서 아빠는 물류센터에서 아이는 피씨방에서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할아버지는 복지센터에서 익숙치 않는 쉼표의 그물에 걸린 가족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죽어도 걸리지 않고 걸려도 보이지 않는 쉼표의 고리들이 둥둥 떠다녔다 걸려 울다가 잠드는 매미의 가족이 있었다 곁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행렬들 순서가 흐트러질수록 선명한 노래며 죽은 바다에 떠도는 해파리처럼 그물에 걸린 N차의 울음소리가 마을을 휘감고 있었다 울어도 울어도 죽어야만 들리는 위험한 매미의 노래가 있었다 끝나지 않는 투명한 그물이 있었다 가난해야만 걸리는 가시 그물이 있었다

 

거둬들일 수 없어 익숙한 지옥

두려움을 껴안고 의심을 껴안고

서로를 위로하는 동안

N차들의 마을에는

무거운 그물이 함께 살고 있었다

 

 


 

 

김윤환 시인 / 기도

 

 

씻어 내는 일이다

잘라 내는 일이다

 

무엇을 씻어 낸다는 것은

지난 시간 게워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백지장의 넉넉함을 만드는 일이다

 

무엇을 잘라 낸다는 것은

자란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다

 

스스로는

할 수 없어서

하늘의 힘 빌리는 거다

 

 


 

 

김윤환 시인 / 그리운 비수

 

 

밖에서 칼 갈아요' 외치는 소리.

참 오랜만이다

요즘 칼들 '스텐' 이라

몇 달은 쓰고도 그대로 인데

그래도 칼 가는 사람 있구나

 

나이테만큼

겹겹이 두른 고집

출렁이는 뱃살

 

아이쿠

야보시오 칼장수

 

 


 

김윤환 시인

1963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 협성대 및 同 대학원 졸업(신학석사),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문학박사).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릇에 대한 기억』 등과 사화집 『창에 걸린 예수 이야기』,  논저 『박목월 시에 나타난 모성하나님』, 『한국현대시의 종교적 상상력 연구』 등이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기독교 감리회 목사, 협성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