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 시인 / 별자리를 보다
아이들 다녀간 방에 불이 켜져 있다 들어가 불을 끄자 천정에 밤의 별자리가 야광 색으로 떠오른다 아, 내가 모르고 있던 별자리들 밤하늘이 지구를 보여 준다 파들 파들 눈꺼풀처럼 떨리는 손자별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처럼 고추를 내보이고 있다 꼬불 꼬불 손가락이 엄마별에 가 닿으려고 한다 암흑 물질이 질펀한 우주에 반짝이는 별들, 새끼별들 괜찮을까 서로가 자전과 공전처럼 돌았다 밥을 같이 먹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같이 놀았던 기억도 없다 잠깐씩, 순간순간 달의 앞으로 지나갈 때처럼 달의 뒷면이 궁금했지만 익숙한 표정들을 확인하면서 안도했을 뿐이다 새벽부터 가게를 여는 아내는 아내대로 퇴근하자마자 허겁지겁 글에 매달려 끙끙거리는 나는 나대로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고아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캄캄한 우주에 별자리를 만들고는 날개깃을 다듬으며 잠들었을 것이다 저들도 궤도를 따라가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떠나간 둥지에서 떨어진 깃털 같은 별자리를 본다 더 멀리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박홍 시인 / 윤회를 꿈꾸다
망둥이가 3초 정도만 기억한다는 것은 행운일 수도 있다 그들은 3초마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구질구질하게 갔던 길을 다시 가고 왔던 길을 다시 오는 것이 아니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가 되어 그 큰 눈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다 얽힌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는 삶도 삶이지만 싸늘하게 식은 사랑을 확인하고 돌아다니는 나의 그림자가 외포리 바닷가의 전봇대 보다 길게 뻗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했던 장소를 찾아 바람처럼 떠돌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아득하게 녹아내리는 사랑의 입맞춤이 그리워 밤마다 느낌의 주위를 맴도는 불면의 밤도 없을 것이다 마음 속 높은 곳에 수시로 뛰어올라 올라 목 놓아 이름을 부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의 흔적을 찾아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외포리 앞바다에서, 문득 3초 정도만 기억하는 생에 스며든다면 툭 불거진 눈과 커다란 입으로 텀벙거리는 망둥이가 된다면 그건 공평하게 한 번씩 나눠 가지는 행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홍 시인 / 꽃의 순장
아침 일찍 상리마을에 가서 병꽃나무울타리의 병꽃을 따면서 한나절을 보냈다 깨진 유리조각에 닭의장풀꽃을 넣고 바닷물을 출렁거리며 놀았다 해는 아직도 하늘 가운데 묶여 있고 세상은 오래된 경첩처럼 헐거워져 있었는데 어느 집 울타리 너머 혓바닥을 붉게 빼문 칸나 꽃을 보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서웠다. 눈길 가는 곳마다 혓바닥처럼 휘감기는 붉은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세상은 이름으로 분류할 수 없는 색깔들의 목숨 건 전시장이었다 같은 모양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세계가 시작되고 꽃들은 나의 현미경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영안실에 가지런히 놓이는 꽃들을 본다 가장 아름다울 때에 순장殉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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