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듬 시인 / 삼월은 붉은 구렁을
나는 이 구렁텅이가 싫지 않아요 삼월은 붉은 구렁을 흘러넘치게 하죠 아무리 많이 모여 있어도 넌 쉽게 눈에 띄어 그러나 아무도 우릴 구별 못 할걸 그래서 뭐 동생이 탕 안에 똥을 싸는 바람에 우린 ㅉᅩᄌ겨났어요 발가벗은 채 탈의실에 누워 눕자마자 배가 고파요 다시 면접과 위생 검사 등급 판정을 기다려야 해요 의사는 내 피를 한 번 태반 추출물을 세 번 뽑아갔어요 넌 죽지 않을 거야 더럽다고 태만하다고 때려죽이지 않을 거야 내가 구해줄게 동생이 날 달랩니다 잘 자 우리는 두 개의 캐비닛 안에 침상을 배정받았어요 오 제발 수용소 격리 시설로 보내달라고 애걸했지만 시간은 호송 열차처럼 달리고 언제나 자격 미달 함량 초과 안전도가 미심쩍은 우리는 툴툴거립니다 꿀꿀댄다고 하는데 오해 없기를 이건 불평이 아니라 타고난 발성 우리의 언어 전혀 외국말은 몰라요. 사람들은 불을 피우지만 우리를 위해서 불을 피우는 건 아니에요 게으르고 더러운 우리는 계속 게으르고 더럽고 싶습니다만 뜯어먹지 못해 안달이네요 정원이 넓은 저택에서 바비큐 파티가 한창이고요 난 병에 걸리고 싶어 땅을 파헤칩니다 지푸라기 부패해가는 얼굴의 검은 노래가 깊은 고랑 너머 저녁이 될 때까지 진흙 구렁텅이 깊숙한 정원으로 가는 호송차를 탔지요 나는 고립된 마을 이상한 공기에 호감을 느껴요 이 붉은 구렁이 맘에 들어요 내 동생은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예쁘지만 매몰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툴툴거리며 나는 산을 오릅니다 기분이 썩 좋다는 뜻이에요 도살장으로 이동하는 번거로움 없이 축사 옆 웅덩이로 최초로 사람들 구경꾼의 관심까지 받으며 비라도 쏟아지면 저 신날 거예요. 나는 이 진흙 구덩이 안이 좋아요 똥을 싸도 괜찮아요 만날 따돌림받았는데 어쩌다 동반 자살도 시도했었는데 세 수도 없이 한꺼 번에 산 채로 토막 나고 뒤죽박죽 피투성이로 처음 마주친 우린 서로 똥과 피를 흙을 퍼부으며 장난쳐요 최초로 심장이 불타오릅니다 아버지 울지 마세요 눈깔에서 폐수 좀 흘리지 말라고요 미리 팔아먹지 못해 안타까우세요 내가 춤추며 불타오르지 않아 찜찜 하고 수도관 타고 흘러들어갈까 봐 불안하세요. 그래서 뭐요. 세상은 거대한 봉분 고랑 너머 위생적인 사육장 삼월이 가고 꽃 피는 사월이 가고 나에게 오월을 묻지 마세요 폭우가 쏟아지지 않아도 삼월이 붉은 구렁에 흘러넘치지 않아도 난 지금 사라지는 내가 지독한 악취가 처음 마음에 들어요.
*온다 리쿠의 장편소설 제목.
김이듬 시인 / 당신의 코러스
당신의 노래가 나를 흔드네 나를 흔들어 심지어 지금에 와서도 나를 내려다보며 내게 미소 지으며 나를 위해 노래한다 노래하네 하얀 레이스 강보에 싸여 나는 베리 굿 맨 스윙스윙 흔들거리네 당신의 노래는 커리 소시지 반쯤 탄 빵 나는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따라 수면에서 수면으로 이동하는 물고기 당신의 노래는 머리맡에 죽은 새 내가 깰까 봐 얹어놓은 검은 코러스 나는 방해하지 않네 더 이상 소란 피우지 않아 당신의 노래는 내 머리맡에 죽은 쥐 죽은 쥐의 배 속에 까마득히 아름다운 거 당신은 내 매스리스 위로 기어올라와 물에 젖은 체리 케이크 같은 얼굴로 몸을 굽히고 노를 저어 난 수면에 빠져 숨을 쉴 수 없는데 좋아? 음 만져볼래? 사정해도 돼? 음 아가리를 벌린 진열대 생선처럼 난 눈이 안 떠지네 내 심장과 배를 훑고 귀를 기울이다 냄새를 맡아 내가 잠든 척하면 당신은 떠나겠지 아예 잠들면 당신은 떠나겠지 또다시 당신의 노래는 나를 흔드네 날 흔들어 심지어 지금에 와서도 절고 축축한 매트리스에 무릎 꿇고 내 이마를 쓰다듬지 당신의 노래는 머리맡에 죽은 쥐 그 배 속에 우글거리는 슈거볼같은 거 귓속으로 밀려와 내 심장과 배를 훑고 허리를 잡고 뇌로 올라와 오 나의 사랑 이제 그만 쉬어라 난 온종일 가물가물 수면에서 수면으로 흘러가는 매트리스 당신의 코러스가 내게 귀를 기울이지 당신들의 노래 모두 한 입술로 다시 해봐 잘될 거야 토닥토닥 내 발아래에서 머리 끝으로 애무하듯 끌어올리는 이 지퍼 당신의 코러스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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