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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용옥 시인(익산) / 새들은 제 이름을 모른다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31.

김용옥 시인(익산) / 새들은 제 이름을 모른다

 

 

학소암을 둥글게 품은 산 학산에 올라

 

깐깐한 껍질의 소나무가 바늘잎을 떤다

 

바람보다 먼저 잡목이 소소소 소근거린다

 

잡목숲 소나무숲에

박새 딱새 딱따구리 직박구리 후투티

제 목소리 제 몸짓으로 인사를 한다

새의 이름을 불러도 새들은 대답이 없다

사람이 사람끼리 분별하라고 이름 지었다

 

새들은 제 이름을 모른다

 

 


 

 

김용옥 시인(익산) / 검둥개

 

 

기억속의 검둥개를 꺼내어

상처에 연고인 양 바르며 동행을 한다

 

우리집 검둥개는 꼬마소녀의 단짝동무,

마당의 수돗가 감나무 위로 달빛

뽀시락거리며 내리면

가늘고 기일게 고음으로 누군가를 참,

그리워했다

유리창을 투과한 겨울햇볕 아래서

검둥개를 끌어안고 동화책을 읽으면 참,

온몸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런 검둥개가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에

뒷발 한 짝을 올리고 서 있다가

절며 절며 내 꽁무니를 따라 귀가했다

그 후로 틈만 나면

검둥개는 제 발목의 상처를 핥고 핥았다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힘이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내 상처를 스스로 핥는다.

 

 


 

 

김용옥 시인(익산) / 접신시接神詩

 

 

살고 싶거든

묵은 춤사위를 버려라

머리를 쥐어뜯으며

가슴을 쥐어짜며

어설픈 춤을 출 때가 아니다

 

접신을 할 만 한 그때

강신무를 추어라

강신무를 추듯이 접신시를

지어라

 

 


 

 

김용옥 시인(익산) / 인형연인

 

 

우린 슬프게 이별할 줄 몰라요

내 발자욱이 그대 가슴에

찍히지 않는군요

우린 아프게 눈물 흘릴 줄 몰라요

추억이 정자나무로 자라지 않는군요

 

길목마다에서

재빨리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고

나는 발걸음을 홀로 떼어야 해요

손에 손 굳건히 잡을 수 없고

마음에 마음을 미처 기울일 수 없는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린 인형연인,

공존공생의 벽이 있거나 없거나

함께 호흡할 수 없고

사랑의 끈이 있건 없건

우리는 진실을 도난당한 인형연인,

 

현대인 우리는 시간 없는 인형연인

현대인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린 인형연인

 

 


 

김용옥 시인(익산) / 나무새

 

 

저 겨울 강물에 쌍쌍으로 노니는

겨울 큰고니의 깃털은 포근하고 따스하다

저 산 숲에서 고음으로 찬미하는

산새의 날개는 강건하고 가볍다

 

저 창공에

누추한 민초의 한 소망을 기원하여

갈재 산마루에서 삭아가는 솟대로 사는

나무새는

깃털 한 터럭 날개 한 짝도 돋울 수 없다

민초의 미륵불은 영영 날아오지 않는다

 

오래 살아도 나무새는

가짜다

 

 


 

 

김용옥 시인(익산) / 안분지족安分知足

 

 

아무라도

오고 싶으면 오시라

아무 것이라도

인연이 닿을 때 오시라

 

아무도

기다리지 아니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아니한다

 

내 마음에

이미 문門이 없다

 

 


 

김용옥 시인(익산)

전북 이리 출생, (金容玉) 1988년『시문학』추천완료. 중앙대학교 영어영문과 졸업​. 전북문학상, 박태진문학상, 전북예술상, 전북 해양문학상, 구름카페문학상, 전영태문학상, 다수. ​시집 :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이유는』 『세상엔 용서할 것이 많다』 『누구의 밥숫가락이냐』 『이렇게 살아도 즐거운 여자』 『새들은 제 이름을모르다』 수필집 :​ 『生놀이』『틈』 『아무것도 아닌 것들』『생각 한 잔 드시지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