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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흔복 시인 / 눈보라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3.

이흔복 시인 / 눈보라

 

 

길 밖에서 길을 바라보면

길 아닌 길 없다.

 

- 시집, <서울에서 다시 사랑을>(실천문학, 1998)

 

 


 

 

이흔복 시인 / 바다

 

 

바다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닮는다

 

바다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의 길을 걷는다.

 

-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봄날>

 

 


 

 

이흔복 시인 / 낙타는 길을 잃지 않는다

 

 

황허의 아침은 물안개로 시작된다. 밤새 밤안개에 젖은 깃을 털어내려는 듯 강바닥을 스치며 낮은 비행을 하는 새 신기루처럼 아른 거린다.

 

생전에 누리던 영화에 비하면 볼품없는 반구상의 양귀비의 분묘를 보니 나의 지친 마음은 차라리 비장하여라.

 

드넓은 평야에 야트막한 언덕이며 호수며 나무를 군데군데 놓아 둔 푸른 초원을 지나 구름 높이 머리에 이고 앞을 보고 뒤를 보지 않고 내 그림자에 놀라고, 낙타를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건너기 힘든 사막을 길을 횡단한다.

 

모래산 너머 모래바다 그 바다에 닻을 내린 밤, 바람은 매섭다

 

별빛을 등에 지고 들어앉아 쉬어가는 둔황에서 서쪽으로 천 리 길 온통 사막이다

 

실크로드를 가는 나그네는 절대로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 실크로드를 가는 낙타는 육안으로도 먼 길을 간다

 

햇빛에 붉게 불타는 화염 켜켜이 쌓인 지평선 서쪽 끝으로 삼장법사 일행을 따라 간 곳은 지평선 붉게 물들이며 멀리 번져나가는 또, 사막이다.

 

시집 『먼 갈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이흔복 시인

1963년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 경기대학 국문학과 졸업. 1986년 문학 무크지 《민의》를 통해 〈임진강>외 5편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서울에서 다시 사랑을』, 『먼 갈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나를 두고 내가 떠나간다』, 『내 생애 아름다운 봄날』이 있음.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