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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수 시인 / 유리의 표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4.

이수 시인 / 유리의 표정

 

 

바다는 몸피를 숨기며 빛난다 물고기들의 혈투를 모른 척 덮고 있는 오후의 수면, 반짝이는 것들은 턱밑에 구멍을 숨긴다

 

마른 꽃다발은 살짝 스쳐도 부서진다 어깨를 부딪쳤을 뿐인데 무너지는 사람, 한 점 점성도 허락지 않는다

 

빌딩에서 빛들의 아우성이 쏟아진다 어둠에서 울음은 혼자서 자란다 넘어지는 일들이 잦아졌다

 

원룸의 골목에서 길을 헤매다가 우기를 만났다 쉽게 상하는 물고기들, 비린내를 풍기며 구름이 몰려온다

 

장식장에서 상패들이 빛난다 깨어지며 슬프게 태어나는 모래의 알갱이들, 눈물을 잃어버린 유리의 기억 같은

 

동네 음식점은 주인을 잃었다 매번 뜯기며 부서지고 있는 내부들, 길목에는 군데군데 쓰레기 무덤이 생겼다

 

어디선가 모래가 소리 없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발목부터 사라지고 있다 누군가의 얼굴이 수북하게 쌓인다

 

 


 

 

이수 시인 / 지류

 

 

우리는 나뭇잎 모양으로 뻗어나간다 어디든지 닿는 물의 아가미를 펄떡이면서

어느 오지 마을의 개울에서 핏줄처럼 다시 만나기도 한다

호수에서는 네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고요히 엎드려 있는 슬픔의 뿌리들

모래톱과 조약돌, 수선화를 가까이에서 만나 좋았다 멀리서 목도한 것은 의심에 빠지므로

우리는 골짜기의 윤곽을 더듬고 있다 골목에서 빠져나온 긴 어둠의 숨소리

 

 


 

이수 시인

충남 태안에서 출생. (본명 : 이정숙) 배재대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수료. 한남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졸업(석사). 2017년 《시작》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늘의 표정이 구름이라는 것은 거짓말이야』(천년의시작, 2020)이 있음. 2018년 아르코 창작기금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