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협 시인 / 황톳길
끄느름하게 가라앉은 하늘은 오늘도 울고 있다. 한 사내가 가을에 참대통을 꽂아 허기를 채우고 있다. 여름 멍석에 뒤숭거리는 붉은 고추, 숭숭 새끼줄을 풀어 틈 새로 이름없는 이의 푸르둥둥한 희망을 엿보고 있다. 가슴이 말라버린 사내는 가을처럼 울고 싶다. 생솔까지 위로 뽀얗게 피어나던 매케한 연기보다 더 아프고 싶다. 점점 희미해지는 웃음을 잃은 얼굴이 그립다. 깊어가던 가난한 어둠의 길목 비척대다 밤마다 어머니의 몸 어딘가에서 샘솟던 나무젖가락 부서지는 소리가
이현협 시인 / 실어증, 29.7도
천상에 든 아버지 후배를 배웅하는 푸른 비탈, 벌거벗은 촛불을 든 점집은 배가 고프다 오촌의 마천루에 가려진
산초나무 아래 바글바글한 제비꽃들과 눈물 한 잔 올렸다 붉은 밤 호명에 목 졸린 번호들과 해후 하셨는지요.
공포를 뒤집어쓴 폐간 당한 청춘 환불 받았는지요. 살아남은 101번지 구더기들과 결핍을 끌어안은 29.7도의 성찬,
멸망 당한 복권復權에 어금니를 악무는 그리운 파멸은 실어증失語症이다
이현협 시인 / 생피 한 방울이거나
여린 입술의 거친 소매, 빈 그림자 껴 안은 무력한 영롱함, 위태로운 열광에 취하거나 주체하지 못한 어지러움,
얼음보다 차가운 발렌타인을 암송*하는 13일의 금요일,
숨죽인 낡은 책갈피 이고르트*의 휑한 웃음, 붓을 잃거나, 빛보다 빠른 기차를 놓치거나 먹물 뒤집어쓴 미궁이거나,
혹은 망각이거나, 고전으로 가는 유리벽, 푸른 생피 한 방울이거나, 유리벽 속에 갇힌 이슬.
*이고르트-이탈리아의 화가 *퍼니발렌타인-쳇베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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