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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혁분 시인 / 오븐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4.

김혁분 시인 / 오븐

 

 

한때는 덤덤했지

어느 날 저녁 당신이 나를 열어 나는 뜨거워졌지

 

긴장하지 마

예열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해

 

훅 훅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배꼽까지 내려가고 있는 열기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그때

나를 열어 봐

 

침착해야 해

다 데워지지 않았다면

 

좀 더

조금만 더

 

 


 

김혁분 시인 / 목욕탕에는 국어사전이 없다

 

 

- 물을 아껴 씁시다 -

 

목욕탕 안에서

한 여인이 씻고 있어

 

코끼리 같은 몸으로

어디서 물 좀 써 봤다는 듯 샤워기를 틀어놓고

 

몸에 물이 닿자 폭포가 생겼어

가슴에서 1단 배에서 2단 그 아래로 3단

 

3단 폭포가 몸을 약간 구부리자 2단으로 변신했어

 

나는 그 옆에서 빈약한 가슴을 가리며

젖탱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고 싶었어

 

코끼리처럼 쿵쿵거리며

두 발을 벌리고 서 있는 여인은 분명 정글 숲에 있었어

 

검은 수풀을 헤집으며

정글 숲을 지나가고 있었어

 

나는 정글 숲을 돌아서 가며

물은 물 쓰듯 써 버려야한다고 오늘 한 수 또 배웠지

 

- 물을 아껴 씁시다 -

 

목욕탕에는 국어사전이 없었어

 

 


 

 

​김혁분 시인 / 주식株式 주식主食

 

 

미스터 손은 마이더스 손이라 해서 우량 건설 감자주식을 샀다

마이더스 손은 삽질만 하는 마이너스 손이었다

 

주식은 퍼 넣을수록 속 쓰린 밥 같았다

전광판 가득 오르내리는 말씀의 장에 들어도 푸른 화살만 빗발쳤다

 

누군가는 치고 빠지다 자빠지고

누군가는 치고 들어가다 자빠졌다

찬밥이 될지 쉰밥이 될지 모르고 뜨거운 밥이라 믿었다

 

김빠지는 소리가 들려도

운칠 삼기는 재력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며 끌어 모은 전錢을 투하했다

 

치고 빠질 순간에 치고 들어가는 개미의 악수握手였다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뛰어야 장이라고 물 타기를 한다

떨어지는 칼날을 잡았지만 끝까지 가보는 거다

 

치고 빠지는 묵언수행도 세시 반이면 해제되지만

밑장 빼서 다진 쌍바닥은 한밤중에도 묵언중이다

 

관은 영관을 달고 외인은 와인을 들고 돌아설 때

눈감고 경구를 외는 신념은 독실한 신앙이 되었다

 

주식株式은

삼시 세끼 어금니를 깨물어야 하는 주식主食과의 악수였다

 

 


 

김혁분 시인

충남 보령에서 출생. 2007년 계간《애지》에 <젓가락에 대한 단상> 외 4편으로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 대전작가회의 회원. 애지문학회 회원. 시집; <목욕탕에는 국어사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