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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현숙 시인(춘천) / 기쁜 나무가 온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5.

김현숙 시인(춘천) / 기쁜 나무가 온다

 

 

대관령 바람

대룡산 기슭에서

어깨에 짊어진 눈을 털고

이별의 눈물 흘린다

 

오미크론 진눈깨비면

좀 어떠냐!

봄이 온다

기쁜 나무가 온다

 

척박한 땅에

먼저 뿌리내렸던

올곧은 자작나무

옥토 건네주고

기꺼이

어린 소나무 배경이 된다

 

또 한 바퀴 새겨진

세월의 나이테

나이 탓

세상 탓하면 뭐해?

봄이 온다

지혜로운 나무들이

눈물 털고 일어선다.

 

 


 

 

김현숙 시인(춘천) / 에어컨

 

 

너는 거실 안에 있고

나는 외벽에 붙어있다

 

너의 입은 남극의 입김

나의 입은 사막의 열기

 

너의 눈은 안에서

보채는 아기를 잠재우고

나의 눈은 밖에서

철근을 등에 진

일용직 가장의

가쁜 숨을 본다.

 

너의 귀는 가전제품 소리

나의 귀는 자동차 소음이

익숙하다

 

설치 기사가

안과 밖으로

긴 혈관을 연결한 후부터

우리는 샴쌍둥이

 

열기가 극한에 다다르면

밖에서부터 안으로

화산처럼

폭발할 수도 있다.

 

 


 

 

김현숙 시인(춘천) / 코로나 영상통화

 

 

간호사에게 간식 전하고

뵙지 못한 지 2달 만에

울린 핸드폰

“코로나 무습다는데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아프거나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난 괜찮아. 빨리 나가야 할 텐데…”

허공에 퍼지는 마른 목소리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육십 평생 듣는

아버지의 밥걱정

 

허리 일으킬 힘 없어

타인의 도움으로

얼굴 마주한 고목(古木)

하염없이 손 휘젓지만

목까지 찬 황토물 어찌하리

 

“아버지의 머리카락에

하얀 벚꽃잎이 날려요

지팡이 짚고 일어서서

훨훨 날아오세요”

영상통화 끝내고

마음으로만 간직한 문자

 

4월 어느 봄날

물에 누운 고목과 나눈

황톳빛 대화

 

 


 

김현숙 시인(춘천)

201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등단, 춘천문인협회 사무국장, 저서: 시세이(시와 에세이) <바람의 모서리>외 다수. 시집 <희망의 간격>, <아버지의 뗏목>. 제17회 춘천문학상'수상. 강원문인협회, 춘천문인협회, 수향시낭송회원, 강원다문화복지신문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