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시인(춘천) / 기쁜 나무가 온다
대관령 바람 대룡산 기슭에서 어깨에 짊어진 눈을 털고 이별의 눈물 흘린다
오미크론 진눈깨비면 좀 어떠냐! 봄이 온다 기쁜 나무가 온다
척박한 땅에 먼저 뿌리내렸던 올곧은 자작나무 옥토 건네주고 기꺼이 어린 소나무 배경이 된다
또 한 바퀴 새겨진 세월의 나이테 나이 탓 세상 탓하면 뭐해? 봄이 온다 지혜로운 나무들이 눈물 털고 일어선다.
김현숙 시인(춘천) / 에어컨
너는 거실 안에 있고 나는 외벽에 붙어있다
너의 입은 남극의 입김 나의 입은 사막의 열기
너의 눈은 안에서 보채는 아기를 잠재우고 나의 눈은 밖에서 철근을 등에 진 일용직 가장의 가쁜 숨을 본다.
너의 귀는 가전제품 소리 나의 귀는 자동차 소음이 익숙하다
설치 기사가 안과 밖으로 긴 혈관을 연결한 후부터 우리는 샴쌍둥이
열기가 극한에 다다르면 밖에서부터 안으로 화산처럼 폭발할 수도 있다.
김현숙 시인(춘천) / 코로나 영상통화
간호사에게 간식 전하고 뵙지 못한 지 2달 만에 울린 핸드폰 “코로나 무습다는데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아프거나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난 괜찮아. 빨리 나가야 할 텐데…” 허공에 퍼지는 마른 목소리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육십 평생 듣는 아버지의 밥걱정
허리 일으킬 힘 없어 타인의 도움으로 얼굴 마주한 고목(古木) 하염없이 손 휘젓지만 목까지 찬 황토물 어찌하리
“아버지의 머리카락에 하얀 벚꽃잎이 날려요 지팡이 짚고 일어서서 훨훨 날아오세요” 영상통화 끝내고 마음으로만 간직한 문자
4월 어느 봄날 물에 누운 고목과 나눈 황톳빛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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